♥ 복음 말씀 ♥
+.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요한 5,1-3ㄱ.5-16)
♥ 오늘의 묵상 ♥
심리학에서 쓰는 용어 가운데 “내면 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치유되지 않고 성인이 되었을 때 그 내면에 성장하지 못한
‘상처받은 아이’를 안고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에는 성장을 멈춘 아이가 있어서 생활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집착, 갑작스러운 분노와 자기 연민 등에
빠져 있는 경우가 바로 성장하지 못한 ‘내면 아이’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벳자타 연못가에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병자의 모습도 ‘
내면 아이’를 안고 사는 한 유형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과 이 병자의 대화를 살펴보면 곧바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건강하고 싶으냐?” 하고 묻자 병자는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벳자타 물이 출렁거릴 때 아무도 자기를 그곳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어서 치유보다는 동정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건강하고 싶으냐? (=건강하게 되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이 ‘원하느냐’(want)라는 표현 속에는, 건강해지고 싶은 ‘의지’(will)와 ‘갈망’(desire)이
같이 있는지를 묻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내면 아이’를 성장시키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치유되고자 하는 의지와 갈망입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상처가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 속에 숨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치유를 하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갈망을 가지고 상처와 화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우리를 치유하시고 성장시켜 주시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4월 5일
H-Simon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 우리의 힘.
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