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년 영국 켄트 왕국의 왕(560-616년)이 된 성 에텔베르트는
5세기에 브리타니아를 침입한 게르만족 중 하나인 주트족(Jutes)
헹기스트(Hengest)의 후손인 에오르멘릭(Eormenric-Irminricus)의 아들이다.
560년 아버지로부터 켄트의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집권 초기에
웨식스(Wessex)의 시올린(Ceawlin)으로부터
브리타니아 전체 통치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크족 메로빙거 가문의 샤리베르(Charibert)의 딸
베르타(Bertha)와 결혼함으로써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였다.
그런데 베르타는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결혼 조건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베르타는 상리(Senlis)의 성 리웃하드(Liudhard, 5월 7일) 주교를 대동하여 왔으며,
에텔베르트는 그에게 왕국의 수도인 캔터베리(Canterbury)의 옛 성당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을 하사하였다.
한편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는
영국 브리타니아족을 침략한 픽트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 이교 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사명을 주어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를 켄트로 파견하였다.
성 에텔베르트는 597년 켄트 해안에 도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사도직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은 같은 해 예수 성탄 대축일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앵글로 색슨족 중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 왕이 되었다.
당시 왕권이 절정에 다다랐던 성 에텔베르트는 세례를 받은 후
앵글로 색슨 교회의 선교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캔터베리 대주교좌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다.
성 에텔베르트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거의 56년 동안 선정을 베풀다가 616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 성당에
베르타 왕비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그는 에텔베르투스(Ethelbertus)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