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2월 26일 聖네스토르, 聖에텔베르트님..등

H-Simon 2011. 2. 25. 14:26

 

 

 2월 26일(토)

 聖네스토르, 聖에텔베르트님..등

  

 

 
 

마지두스의 성 네스토르(Nestor)
   

  주님 손 잡고 일어 나세요  

 

 

 

 

 

 

 

    ▶네스토르(2.26)
 
성인명 네스토르(Nestor)
축일 2월 2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마지두스(Magydus)
활동연도 +251년
같은이름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마지두스의 성 네스토르(Nestor)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팜필리아(Pamphylia)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총독 폴리오는 가장 잔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였던 인물이다.
 
그 당시 마지두스의 주교는 성 네스토르였는데,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이상적인 사목자였다.
그는 자신이 박해의 주요 대상인줄 알고 있었지만 신자들의 안전을
더 걱정한 나머지 집에서 운명을 기다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관리들이 다른 신자들보다 자신을 먼저 잡아감으로써
신자들이 피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때
군인들이 들이 닥쳤다.
이때 재판관은 그에게 힐문하였다.
 “그대는 황제의 명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이에 네스토르는 “나는 전능하신 분의 명을 알고 있소.” 하고 대답했다.
재판관이 배교하고 신상 앞에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매 뿐이라오.”
이리하여 그는 총독 폴리오로부터 직접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십자가를 메고 가면서 주위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모두 무릎을 꿇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하시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신자와 비신자까지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총독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에텔베르트(2.26)
 
성인명 에텔베르트(Ethelbert)
축일 2월 2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활동지역 켄트(Kent)
활동연도 +616년
같은이름 에뗄베르또, 에뗄베르뚜스, 에텔베르또, 에텔베르뚜스, 에텔베르토, 에텔베르투스

 

켄트의 성 에텔베르트(Ethelbert)


   560년 영국 켄트 왕국의 왕(560-616년)이 된 성 에텔베르트는
5세기에 브리타니아를 침입한 게르만족 중 하나인 주트족(Jutes)
헹기스트(Hengest)의 후손인 에오르멘릭(Eormenric-Irminricus)의 아들이다.
 
560년 아버지로부터 켄트의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집권 초기에
웨식스(Wessex)의 시올린(Ceawlin)으로부터
브리타니아 전체 통치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크족 메로빙거 가문의 샤리베르(Charibert)의 딸
베르타(Bertha)와 결혼함으로써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였다.

   그런데 베르타는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결혼 조건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베르타는 상리(Senlis)의 성 리웃하드(Liudhard, 5월 7일) 주교를 대동하여 왔으며,
에텔베르트는 그에게 왕국의 수도인 캔터베리(Canterbury)의 옛 성당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을 하사하였다.

   한편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
영국 브리타니아족을 침략한 픽트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 이교 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사명을 주어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를 켄트로 파견하였다.
 
성 에텔베르트는 597년 켄트 해안에 도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사도직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은 같은 해 예수 성탄 대축일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앵글로 색슨족 중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 왕이 되었다.
당시 왕권이 절정에 다다랐던 성 에텔베르트는 세례를 받은 후
앵글로 색슨 교회의 선교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캔터베리 대주교좌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다.

   성 에텔베르트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거의 56년 동안 선정을 베풀다가 616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 성당에
베르타 왕비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그는 에텔베르투스(Ethelbertus)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