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2월 2일 聖女요안나 레토낙, 聖고르넬리오님..등

H-Simon 2011. 2. 1. 16:42

 

 

2월 2일(수)

聖女요안나 레토낙,
 聖고르넬리오님..등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oanna de Lestonnac)

주님 내 속에 
 
 

 

 
 
 
 
 
 
    ▶요안나 드 레토낙(2.2)
 
성인명 요안나 드 레토낙(Jane de Lestonnac)
축일 2월 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56-1640년
같은이름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안, 조안나, 조한나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oanna de Lestonnac)

 


   성녀 요안나 드 레토낙(Joanna de Lestonnac)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에서
저명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한 인문주의 철학자였던
미셸 에켐 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조카이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의 분열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분열을 가져온
종교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혼란을 겪고 있었다.
성녀 요안나의 어머니는 칼뱅주의(Calvinism)에 빠져 그 누구의 권고도
듣지 않았다.
다행히도 성녀 요안나는 아버지와 삼촌 덕분에 자기 종교로 이끌고자 했던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녀 요안나는 17살에 가스통 드 몽페랑(Gaston de Montferrant)과 결혼하여
여덟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그녀는 1597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41살에 과부가 되었고 네 아이도 어려서 잃었다.
그녀는 나머지 네 자녀가 모두 자라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았다.
그녀의 두 딸인 마르타(Martha)와 막달레나(Magdalena)는 보르도에 있는
수도원에서 서원을 했고 아들 프란치스코(Franciscus)는 결혼을 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막내딸을 아들에게 맡기고
성녀 요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온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1603년 툴루즈(Toulouse)의 개혁 시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수도원의 엄격한 생활은 그녀의 건강을 해쳤고
그녀는 서원을 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툴루즈 수도원에서 지냈던 마지막 밤에 성녀 요안나는
하느님의 특별한 비추임을 체험하였다.
그것은 설립자로서의 소명과 마리아 영성에 대한 직관이었다.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려는 그녀의 계획은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윤곽이 드러났다.
즉 청소년 교육이라는 과제와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정리되었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젊은 소녀들을 모아
라 모드(La Mothe)에 있는 자신의 땅에서 2년 동안 준비의 시간을 가졌고,
보르도에 극심한 역병이 발생했을 때 용감하게 시민들을 간호하였다.
그러던 중 1605년에 새로 부임한
예수회의 요한 드 보르드(Joannes de Bordes) 신부와
라이문두스(Raymundus) 신부를 비롯한 몇 명의 사제들이 영적으로
그녀의 헌신을 알아보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당시 보르도에서는 특히 여자 아이들의 교육이 큰 문제였다.
대부분 칼뱅주의에 빠진 여교사들이 소녀들의 교육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당시 예수회가 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것처럼
가톨릭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던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맡아줄
여성 수도회의 설립이 절실하던 때였다. 
 
요한 신부와 성녀 요안나는 이런 점에서 서로 뜻을 같이 하고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곧바로 수도회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1606년 3월 6일 성녀 요안나는 요한 신부의 도움으로 보르도의
대주교를 설득하여 특별히 여자 아이들의 교육을 직접적인 사도직으로 하는
여성 수도회인 마리아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요안나의 마리아회는 160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1610년 마침내 보르도에 마리아회의 첫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수도회의 사도직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여
소녀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한때 그녀는 다른 수녀들의 음모에 휘말려 희생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모진 시련을 인내로써 극복하였다. 
 
1640년 2월 2일 96세의 일기로 선종하여 보르도에 묻힌
성녀 요안나의 마리아회는 프랑스 전역뿐만 아니라
에스파냐를 비롯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타리나(2.2)
 
성인명 가타리나(Catherine)
축일 2월 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활동지역 리치(Ricci)
활동연도 1522-1590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리치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성녀 리치의 카타리나(Catharina de Ricciis,  가타리나)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프라토(Prato)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수녀이다.
 
그녀는 좋은 감각과 정성을 다하여 맡아온 수련장과 장상직을 사임하였는데,
그녀의 놀라운 신앙 체험들은 많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매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탈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성녀 카타리나의 영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타난 그대로 교회의 개혁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그리고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아왔다.
 
성녀 카타리나는 1590년 2월 2일 선종하였고,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46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고르넬리오(2.2)
 
성인명 고르넬리오(Cornelius)
축일 2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백부장, 베드로의 제자, 주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
같은이름 고르넬리우스, 꼬르넬리오, 꼬르넬리우스, 코르넬리오, 코르넬리우스

 

미셸 코르네유의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백부장의 세례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설교하다(사도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성령을 받다(사도 10,44-48)


44 베드로가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

45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이 다른 민족 사람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47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다.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주재 로마군 보병대의
백인대장이던 성 코르넬리우스(고르넬리오)하느님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당신 천사를 통해 요빠에 있던 사도 베드로(Petrus)
자신의 집으로 모셔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사도 베드로를 모셔왔고,
그로부터 자신은 물론 온 집안사람들 모두 세례를 받았다(사도 10,1-48).
그때부터 성 코르넬리우스는 사도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성 코르넬리우스는 카이사레아의 첫 주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