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월15일 聖마우로, 聖아놀드 얀센님..등

H-Simon 2011. 1. 14. 18:47

 

 

115일(토) 

聖마우로, 聖아놀드 얀센님..등

   

 

수비아코의 성 마우로(Maurus)


   

  
                                                      

 

 
 
 
 
 
   ▶마우로(1.15)  
 
성인명 마우로(Maurus)
축일 1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수비아코(Subiaco)
활동연도 +580년경
같은이름 마오로, 마우루스

수비아코의 성 마우로(Maurus)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가 돌보던 그의 영적 아들 가운데
신심과 학덕이 뛰어난 인물로 성 마우루스(마우로)가 있었다.
 
그가 처음에 성 베네딕투스에게 왔을 때에는 겨우 12살의 어린 나이였으나,
마침내 그 성인의 보조자가 될 만큼 성장하였다.
한 번은 성 플라키두스(Placidus, 10월 5일)가 호수에 빠졌는데
성 베네딕투스 성인이 그의 방에서 영적인 눈으로 이 사실을 알고는
성 마우루스에게 명하여 그를 구하게 하였다.
성 마우루스가 그 공로를 그의 스승 성 베네딕투스에게 돌리자,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순종의 은혜를 주셨다고 한다.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갔을 때 성 마우루스가
수비아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원장직을 사임하고 은수생활을 선택하였는데,
2년 뒤에 병을 얻어 운명하였다.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의
제대 오른쪽에 안장된 성 마우루스는
오늘날 성 베네딕투스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베네딕토회의 훌륭한 설립자로 간주되고 있다.
 
 
 
 
 
 
     ▶마카리오(1.15)
 
성인명 마카리오(Macarius)
축일 1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은수자
활동지역 이집트(Egypt)
활동연도 300-390년
같은이름 마까리오, 마까리우스, 마카리우스

 

이집트의 성 마카리오(Macarius)


   이집트 출신인 성 마카리우스(마카리오)는 젊어서 가축을 돌보고 지냈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인식하여 세속을 등지고 조그마한 움막에 혼자 살면서
매트를 만들며 기도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부인을 폭행했다는 누명이 씌어지자 그는
길거리로 끌려 나가 매를 맞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하였다.
 결국 그는 모든 시련을 인내한 뒤에야 혐의가 풀려 무죄함이 드러났다.

   그 후 그는 30세 때에 스케트 사막으로 들어가 은수생활을 시작하였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생활은 극히 엄격하여 한 주일에 한 번의 식사만 했고,
일부러 갈증을 느끼기 위해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간단한 몇 마디로 제자들을 가르쳤고 거의 침묵 속에서 지냈다.
 “기도할 때에는 많은 말을 하지 말라.
 다만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시고, 인도해 주소서
하는 말만 마음으로 되풀이 하여라.”
 
한때 그의 제자였던 젊은 성 마카리우스(1월 2일)와 함께 그는 나일 강의
어느 섬으로 추방된 적이 있었는데,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스케트 사막에서만 60년을 살다가 운명하였으며,
사막에 살았던 최초의 은수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아놀드 얀센(1.15)
 
성인명 아놀드 얀센(Arnold Jansen)
축일 1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837-1909년
같은이름 아르놀드

성 아놀드 얀센(Arnold Jansen)


   독일의 라인(Rhine) 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고흐(Goch)에서 태어난
성 아놀드 얀센은 뮌스터(Munster)의 게스돈크(Gaesdonck)에서 공부한 후
1861년 8월 15일 뮌스터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12년 동안 독일 북서부의 보홀트(Bocholt) 시에 있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무렵 비스마르크 재상에 의해 독일 전역에서 문화 투쟁이 벌어지자,
얀센 신부는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873년 교직을 떠난 뒤 본격적으로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원을 설립하기로 결심했으나,
독일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네덜란드의 슈타일(Steyl)로 가서
1875년 9월 8일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을 설립하였다.
 이 신학원이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신언회)의 모태가 되었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세계 선교를 활발히 펼치던 1901년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한편 성 얀센 신부는 1889년 12월 8일 '성령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여
말씀의 선교 수도회와 협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896년 12월 8일
기도로 선교에 참여하는
관상 수녀회인 '성체조배의 성령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 얀센 신부는 1909년 1월 15일 슈타일의 수도원에서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 첫 선교사였던
요셉 프라이나데메스(Joseph Freinademetz)와 함께
1975년 1월 1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다.
그리고 2003년 10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미카(1.15)
 
성인명 미카(Micah)
축일 1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8세기BC
같은이름 미가, 미카이아스, 미캐아스, 미케아스

예언자 미카(Michaeas)


   성 미카(Michaeas)는 구약성서 12소예언서 가운데 한 권인
미카서의 저자로,
‘미카’는 ‘미카후’의 축소형으로 ‘누가 야훼와 같으나?’라는 뜻으로
구약에서는 흔한 이름이다.
예언자 미카의 신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른 예언자들의 경우 통례로 되어 있는 아버지 이름이 생략되어 있고
단지 그의 고향인 유대의 조그마한 촌락 모레셋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1,1).

   심판을 선포하는 사명을 띠고 온(3,8) 유대 출신의 예언자 미카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사제들과 직업 예언자들의 부정을 비난하였으며,
사회적 · 경제적 불의를 신랄하게 고발하였다.
또한 그는 아모스의 정의와 호세아의 사랑을 지닌 예언자였다.
그가 활동했던 1세기 후에 유대의 원로들은 “모레셋 출신 미카가
유대 임금 히즈키야 시대에 예언하였다”(예레 26,18)라고 증언하였고
그의 활동을 들어 예레미야를 변호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으며,
 
 
히즈키야의 종교 개혁도 미카의 예언을 통하여 깊은 영향을 받았다.
직업 예언자들과는 달리 세련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한 미카는
사회 정의를 선포한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지배 계층에 대하여 소농(小農)들의 권리를 주장한
농촌 예언자로 알려져 있다.
 
 
 
 
 
 
   ▶하바쿡(1.15)  
 
성인명 하바쿡(Habacuc)
축일 1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하바꾹

 

예언자 하바쿡(Habacuc)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의 패망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시대에 살았던
12소예언서의 하나인 하바쿡서의 저자인 성 하바쿡(또는 하바꾹) 예언자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다니엘서 14장 33절 이하에 다소 이 예언자에 대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는 ‘미드라시’(Midrash)로서 교훈적인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바쿡서 안에 있는 시편과 하바쿡 1장 2-4절의 신탁이
시편의 한 유형인 애원시와 비슷하다고 하여,
하바쿡서의 저자와 시편을 저작한 성전 시인과의 친분관계를 논하는
학자도 있지만, 그것도 단편적인 추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바쿡은 나훔과 마찬가지로
우선 미지의 인물로 남겨 두는 수밖에 없다.

   하바쿡은 당시 유다 왕국이 처한 역사적 현실을 예언자적 안목 하에서
명상케 한다.
이는 3장의 시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과거 하느님이 행한 역사적인 위업(偉業)을 상기시키면서,
당시의 원수들도 하느님의 처벌을 받게 되리라 소망하며 멀지 않은 장래에
하느님이 극적으로 개입하리라 확신케 한 것이다.
 
 
하바쿡의 ‘예언자적 명상’의 성격은 나훔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한 마디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바쿡서에 제기된 문제는 의인과 악인의 문제이다(예레 12,1-3 참조).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란 노도와 같이 침범하여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칼데아인이며,
의인이란 이러한 이교도의 승리에 충격을 받은 유다 왕국의 백성이다.
 
하바쿡은 이스라엘이 절망과 고뇌 가운데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 충성(emunah)하는 것뿐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께 충성하고 신뢰(aman)하라는
이사야의 메시지(이사 7,96)를 재천명한 것이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 1장 17절에서 하바쿡의 이 메시지를
보다 심화시키고 있으니,
의인이 살아가야 할 방편은 오직 믿음(piotis)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