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26일 聖레오나르도 카사누바님..등

H-Simon 2010. 11. 25. 11:42

 

 

11월26일(금)

聖레오나르도 카사누바님..등

 

포르토 마우리치오의 성 레오나르도 카사누바(Leonardus Casanuova)

  

 

 

 

 

 

    ▶레오나르도 카사누바(11.26)
 
성인명 레오나르도 카사누바(Leonard Casanuova)
축일 11월 2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증거자, 저술가
활동지역 포르토 마우리치오(Porto Maurizio)
활동연도 1676-1751년
같은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카사누바

 

포르토 마우리치오의 성 레오나르도 카사누바(Leonardus Casanuova)


   이탈리아의 포르토 마우리치오에서 태어난
성 레오나르두스 카사누바(Leonardus Casanuova, 레오나르도)
바오로 히에로니무스(Paulus Hieronym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3세 때 예수회의 로마 대학에 갔는데, 그와 함께 생활하던
그의 아저씨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그가 의사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였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아저씨와 의절하고 말았다.
 
그는 1697년에 폰티첼리(Ponticelli)에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이름을
레오나르두스로 개명하고,
로마(Roma)의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공부하여 170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1709년에 피렌체(Firenze)의 산 프란체스코 델 몬테 수도원으로 갔으며,
여기서부터 토스카나(Toscana) 전역을 다니면서 설교를 하였는데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산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가 인콘트로(Incontro) 근교에
수도자를 위한 은둔소를 지었으며,
로마 지역의 선교단을 지휘하면서 6년을 생활하였다.
1736년 그가 산 보나벤투라(San Bonaventura)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으나
다음 해에 이 직책을 사임하고 다시 선교 길에 올라 설교하여
거대한 청중들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열렬한 신심가이자 전파자였다.
또한 성체와 성심 그리고 마리아 신심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잠시 영국 왕위의 주창자인 제임스 3세 국왕의 아내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의 영적 지도자로 일하다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의 명을 받고 코르시카(Corsica)로 가서
설교하고 평화운동을 전교하였으나, 코르시카인들이 그를 선교사로보다는
섬을 통치했던 제노바(Genova) 사람들의 정치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1751년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로마의 산 보나벤투라 수도원으로 돌아왔는데, 도착하던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
43년 동안 열렬한 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1796년 6월 19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6월 29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본당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스틸리아노(11.26)
 
성인명 스틸리아노(Stylianus)
축일 11월 2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주행자
활동지역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
활동연도 +390년경?
같은이름 스띨리아노, 스띨리아누스, 스틸리아누스, 알리삐오, 알리삐우스, 알리피오, 알리피우스

 

아드리아노폴리스의 성 스틸리아노(Stylianus)


   소아시아 지방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의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태어난
성 스틸리아누스(스틸리아노)의 삶은 우리에게 전설적인 형태로만
전해지고 있다.
 
 4세기경의 은수자로 여겨지는 그는 기둥 위에서 고행하는 주행자였기 때문에
스틸리아누스 또는 기둥의 성자라고 불린다.
이러한 수행 방법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6-8세기에
동방 교회에 널리 퍼져있었다.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뿔에 불타는 두 개의 초를 달고 있는 양이 그의 어머니에게 신비로운 형상으로
나타나 그의 탄생을 예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세 때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테오도루스(Theodorus) 주교가
그를 양육하였다고 전해진다.

   적정한 나이가 되자 주교는 그를 부제로 서품하고 본당의 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30세가 되자 그는 완덕의 삶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해 은수자자 되어
처음에는 독립된 작은 방에서 생활하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단식과 극기의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신비로운 영상에 이끌려 기둥 꼭대기에서 자신의 남은 생애 전부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는 거의 50년 이상을 매일같이 기둥 위에서 추위와 고독, 비와 곤충,
배고픔과 목마름, 극도의 불편을 감수하며 살다가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고 한다.

   주행자의 전통은 시리아 수도승들의 엄격한 금욕 전통을 따르던
성 시메온(Simeon, 1월 5일)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는 신심 깊은 사람들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자
기둥 꼭대기에 올라가 생활하게 되었다.
주행자들은 기둥 위에 살면서 세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사막의 은수자들과는 달리 기둥 위에서 예언자적인 직무를 행하였다.
즉 찾아오는 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상담을 해주며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종종 예언의 은사를 받기도 하였다.
 
성 스틸리아누스는 불임주부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알리피우스(Alypius)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