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2일 聖유스토, 聖마르치아노님..등

H-Simon 2010. 11. 1. 19:08

 

 

11월2일(화)

聖유스토, 聖마르치아노님..등

 

  
 

트리에스테의 성 유스토(Jus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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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스토(11.2)
 
성인명 유스토(Justus)
축일 1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트리에스테(Trieste)
활동연도 +289/303년
같은이름 유스또, 유스뚜스, 유스투스

 

트리에스테의 성 유스토(Justus)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시민이었던 성 유스투스(유스토)
참회와 애덕의 생활에 헌신하였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무거운 것을 몸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라는 이름의 한 사제가 바닷가로 떠밀려온
그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1040년과 1624년의 트리에스테 주교좌 성당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유해는
여전히 그곳에 모셔져 있다.
그는 트리에스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고,
그에 대한 공경의 오랜 관습은 현존하는 6세기의 모자이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마르치아노(11.2)
 
성인명 마르치아노(Marcian)
축일 1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칼키스(Chalcis)
활동연도 +387년
같은이름 마르시안, 마르치아누스, 마르치안, 마르키아노, 마르키아누스

칼키스의 성 마르치아노(Marcianus)


   귀족 가문 태생인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마르치아노)
친구와 고향을 떠나 안티오키아(Antiochia)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칼키스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급적이면 가장 외진 곳으로 들어가 협소하고 작은 움막을 지었다.
이 움막은 그의 천국이었고, 주로 하는 일은 시편을 노래하거나
기도와 관상에 젖어서 노동하는 것이었다.
극히 소량의 빵만이 유일한 그의 음식이었고 그것도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첫 번째 제자로 받아들인 사람은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아가피투스(Agapitus)이다.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누스(Flavianus)와 다른 주교들이
그를 찾아와 영적지도를 받았다.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들을 통하여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또 복음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우리 서로와 이웃을 통하여 이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마르키아누스가 무엇을 더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총대주교나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물러났다고 한다.
그는 은둔소의 책임을 에우세비우스에게 물려주었다.
 
 
 
 
 
     ▶빅토리노(11.2)
 
성인명 빅토리노(Victorinus)
축일 1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수사학자, 순교자
활동지역 페타우(Pettau)
활동연도 +304년경
같은이름 빅또리노, 빅또리누스, 빅토리누스

 

페타우의 성 빅토리노(Victorinus)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에 따르면 성 빅토리누스(빅토리노)
그리스 사람으로 수사학자였다.
 
그 후 그는 로마 제국의 속주인 판노니아(Pannonia) 상류 지방의
페타우(오늘날의 오스트리아 남동부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의 주교로 착좌했다.
그곳에서 빅토리누스는 신구약성서 몇 권에 대한 주석서를 썼고,
히에로니무스는 그 책들을 많이 인용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이단자들을 배격하였지만 그 자신이 천년 왕국설(Millenarianism)
깊이 빠져 있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했고,
또 푸아티에(Poitiers)의 초대주교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