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9월11일 중국의 聖요한 가브리엘님..등

H-Simon 2010. 9. 10. 17:36

 

 
9월11일(토)
중국의 聖요한 가브리엘님..등

     

 
중국의 성 요한 가브리엘 퍼보일러(Joannes Gabriel Perboyre) 
16.jpg
                                                    

 
 
 
 
 
   ▶암브로시오 발로우(9.11)
 
성인명 암브로시오 발로우(Ambrose Barlow)
축일 9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85-1641년
같은이름 암브로시우스, 앰브로스

 


   알렉산더 발로우 경과 에드와드의 14명의 자녀 가운데 네 번째인
성 암브로시우스 발로우는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발로우 홀에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로 성장하였다.
 
 
후일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1614년에 프랑스의 두에로 갔으며,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로 갔다.
다음 해인 1615년 그는 두에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암브로시우스란 이름을 얻었다.
그는 1617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 영국으로 돌아가서 랭커셔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 후 2년 6개월 동안 4차례나 체포되었으나 매번 석방되었다.
그러나 1641년 사제들이 영국 국왕으로부터 서품되거나 혹은
국사범으로 낙인찍혀 국가로부터 고통을 당하게 될 때,
그는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고수하다가 그 해 부활절에 체포되었다.
 
그는 석방시켜 줄 테니 사제직을 포기하라는 설득을 거절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의 친구들이 나서서 중재하게 해달라는 부탁도 거절한 채
그는 교수형을 당하여 운명하였다.
 
 
이날은 그가 캔터베리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된 후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의 한 사람으로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요한 가브리엘 퍼보일러(9.11)
 
성인명 요한 가브리엘 퍼보일러(John Gabriel Perboyre)
축일 9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선교사,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중국(China)
활동연도 1802-1840년
같은이름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1802년 1월 6일 남부 프랑스의 카오르근교에서 태어난 성 요한 가브리엘 퍼보일러는 15세 때에 강론을 듣고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키우다가, 라자로회에 입회하여 182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그의 소망과는 달리 첫 부임지는 생 플루르 신학교의 교수였고,
1832년에는 파리로 가서 그곳 수도원의 부수련장을 지냈다.

   그는 1835년에야 중국으로 가는 선교사로 허가를 받고
호남 지방을 맡았다.
2년 동안 그럭저럭 성공적인 설교활동을 하였으나,
박해의 조짐이 엿보이자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어느 신입교우가 그를 밀고하여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는 중국 지역에서 시복된 첫 번째 인물이며,
그의 선교가 분기점이 되어 급속도로 그리스도교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는 1996년 6월 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파프누시오(9.11)
 
성인명 파프누시오(Paphnutius)
축일 9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테베(Thebae)
활동연도 +350년경
같은이름 파프누시우스, 파프누씨오, 파프누씨우스, 파프누티오, 파프누티우스
 

   이집트 사람인 성 파프누티우스(파프누시오)는 사막의 은수자인
성 안토니우스(1월 17일)의 문하생으로 몇 해 동안 지내던 중에
上테베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의 
주교로임명되었다.
 
 
그러나 막시미누스 다이아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동안에 고문을 받다가
오른쪽 눈을 실명당한 루 광산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25년의 제1차 니케아공의회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공의회의 일부 교부들이 기혼자인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에게
아내와 별거하는 의무를 부과시키고자 할 때,
성 파프누티우스는 이러한 제안에 반대하고 단지 성직자는 서품 후에
결혼할 수 없다는 점만 역설하였다.
또한 그는 아리우스 이단과 대항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5월 2일)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프로토(9.11)
 
성인명 프로토(Protus)
축일 9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하인,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57년?
같은이름 쁘로또, 쁘로뚜스, 프로또, 프로뚜스, 프로투스

 

로마의 성 프로토(Protus)와 성 히야친토(Hyacinthus) 형제의 순교


   4세기 중엽에 쓰여진 "로마 순교자 증언록"(Depositio martyrum)
등장하는 성 프로투스와 성 히야킨투스는 순교한 후에 살라리아 가도의
대성전에 묻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들의 무덤은 4세기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는데
교황 성 다마수스 1세(12월 11일)가 보수하였다고 한다.
 
 "성 에우게니아의 수난기"에 따르면
형제 사이인 성 프로투스와 성 히야킨투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백작
성 필리푸스(9월 13일)의 딸인 성녀 에우게니아(12월 25일)의 환관이자
시종으로 그녀를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바실라에게 보내졌는데,
바실라는 그들의 설득으로 개종하였다.
그들은 257년 시작된 로마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로마 신전에
희생 제물을 보내졌는데, 두 사람의 기도로 신전의 신상이 먼지로 변하자
그들을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 성하이킨투스님은 같은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