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6월 30일 福者라이문도 룰로 님..등

H-Simon 2010. 6. 29. 06:48

 

 

6월 30일(수)

福者라이문도 룰로 님..
 
 
성 베드로(Petrus)

 

16.jpg

                                                                 

                            

     ▶라이문도 룰로(6.30)
 
성인명 라이문도 룰로(Raymund Lull)
축일 6월 30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선교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232-1316년
같은이름 라이문두스, 레이먼드, 룰로, 룰루스

 


   라이문두스 룰루스(라이문도 룰로)는 모슬렘으로부터 마요르카 섬을
구출한 어느 장군의 아들로서 마요르카 섬의 팔마(Palma) 태생이며,
아라곤의 야고보 1세 왕의 신하가 되었고,
1257년에 블랑카 피카니와 결혼하였다.
2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라이문두스는 은거생활을 추구하였는데,
1263년에 그리스도의 환시를 본 뒤로 생활을 완전히 바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로카마두르를 순례한 후,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었고,
가족들의 생계 외에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하였다.

   그는 모하메드 교도들의 개종에 관심에 많았으며,
9년 동안 모슬렘에 대해 공부한 뒤, 자신의 이상을 꽃피우기 위하여
마요르카 섬에 트리니타스 대학을 세워 설교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마호메트 교도들의 선교를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그 당시의 정세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하다가,
1306년에 부지에 가는데 성공하였으나 곧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추방되었다.
 
그는 철학, 음악, 항해, 법률, 천문학, 수학, 신학 등의 저서를
아라비아어로 남겼고,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에
버금가는 신비적인 시를 남겼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0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에렌트루다(6.30)
 
성인명 에렌트루다(Erentrudis)
축일 6월 30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잘츠부르크(Salzburg)
활동연도 +718년경
같은이름 에렌뜨루다, 에렌뜨루디스, 에렌트루디스

 

잘츠부르크의 성녀 에렌트루다(Erentrudis)


   성녀 에렌트루다는 성 루페르투스(3월 27일)의 조카로서
 성 루페르투스가 고향 잘츠부르크에 수도원을 세울 때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협력하였고, 나중에는 이 공동체의 원장이 되었다.
성 루페르투스의 서거 얼마 전 어느 날 그녀는 성 루페르투스의 부름을 받고
그를 방문하였다.
이때 그는 성녀 에렌트루다에게 비밀을 지키기로 다짐을 받고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그 약속 중의 하나는 성 루페르투스가 죽고 난 뒤에
곧 나를 따라 영생에 들겠느냐고 물었을 때 성녀 에렌트루다는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굳게 약속하였다.

   성 루페르투스가 죽은 지 얼마가 지난 어느 날 그녀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 성인이 발현하여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사랑하는 자매여, 이제 천국에 들어갈 때가 되었으니 이리 오너라.”
그 후 그녀는 즉시 병이 들었고 며칠 내에 운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718년 6월 30일에 운명한 것 같다.
그 후 그들이 세운 수도원과 성당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3백 년이 지난 뒤에 성 헨리쿠스(7월 13일) 왕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성왕 헨리쿠스는 그녀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늘 기도하며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성녀 에렌트루다의 유해는 현재 논베르크 성당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테오발도(6.30)
 
성인명 테오발도(Theobald)
축일 6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017-1066년
같은이름 떼오발도, 떼오발두스, 테오발두스, 테오발드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의 아르눌 백작의 아들로 프로뱅에서 태어난
성 테오발두스(테오발도)는 장성하여 군인이 되었으나,
수도생활에 대한 미련을 늘 품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는 부친의 허락을 받고서 랭스의
성 르미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기서 발라는 귀족과 만나 아르덴의 쉭시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낮 동안에 석수일과 들일을 하여 생계를 꾸렸고,
밤에는 기도로 날을 밝혔다.
그 후 그들은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로마를 순례하였고,
이탈리아의 비첸차 근교 살라니고에서 은수생활을
계속하였으나 2년 뒤에 발터는 운명하였다.
 
성 테오발두스는 그의 뛰어난 성덕으로 인하여 많은 제자를 얻었고,
그들의 권유에 따라 카말돌리회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의 부모 역시 그에게 감화를 받고 은수자가 되었으며,
1073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필립보 포웰(6.30)
 
성인명 필립보 포웰(Philip Powell)
축일 6월 30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94-1646
같은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영국 웨일스(Wales) 남동부 궨트 혹은 브리컨의 트롤윙에서
태어난 필리푸스 포웰(필립보)는 16세 때에 런던으로 가서 법률을
공부하다가 2-3년 뒤에 업무차 프랑스의 두에로 갔다.
그는 여기서 베네딕토회에 큰 매력을 느껴서 1619년에 입회하였다.

   1622년 3월 7일 그는 영국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처음에 잉글랜드 남서부 데번셔로 가서
어느 가톨릭 신자 가정을 소개받았는데,
그 후 20여 년간 데번과 서머싯 그리고 콘월 지방에서 숨어 다니며
배교자와 이단자들을 권면하는 등 사목활동을 열렬히 전개하였다.
 
영국에 내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고링 장군 편에 가담하여 
종군사제로 일하다가 웨일스 지방으로 여행하던 중에
가톨릭 사제임이 발각되어 런던으로 호송되었다.
옥중생활 속에서도 그의 놀라운 신심과 그리스도교적 덕행이
빛을 발했기 때문에 관리들조차 그를 아주 점잖게 대하였다.
 
그는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