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6월26일 聖비질리오, 聖안텔모 님..등
H-Simon
2010. 6. 25. 08:29
6월26일(토)
聖비질리오, 聖안텔모 님..등

트렌토의 성 비질리오(Vigilius) |
이탈리아 트렌토의 주요 수호성인이 성 비길리우스(비질리오)이다.
로마족인 그는 트렌토에서 태어났고,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후 385년에 트렌토의 주교가 되었는데, 밀라노 대주교이던
성 암브로시우스에게 보낸 그의 편지가 남아 있다.
이 편지에는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적었고, 또 순례에 관한 의견도 나온다.
또 성 시시니우스와 성 마르티리우스 그리고 성 알렉산데르의 순교록을 적었다.
그는 렌데나 계곡으로 선교하던 중 사투른 신상을 파괴하여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
사부아의 샹베리 근교 시냉 성에서 출생한 성 안텔무스(안텔모)는
교구사제가 된 후 1137년에 카르투지오회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랑드 샤르트뢰즈로 파견되었다가
1139년에 제7대 원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그곳을 카르투지오회의 모원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제1차 총회를 소집하였으며,
복자 요한 스파니아드로 하여금 수도회의 회칙에 따라 살려는
여성들을 위하여 회헌을 마련토록 하였다.
1152년까지 총장직에 봉직하다가 은수자로 살았으나,
1154년부터 다시 2년 동안 포르트의 원장을 맡아야만 하였다.
그랑드 샤르트뢰즈로 돌아온 안텔무스는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후원을 받는
대립교황 빅토르 4세에 대항하여 싸우던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을 위하여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텔무스는 1163년에 벨리의 주교로 임명되자
교구 개혁을 광범위하게 착수하였으며,
성직자의 독신제를 강화하고 잘못한 이들을 징계하였다.
훔베르투스에 의해 투옥된 어느 사제가 살해되자
그는 훔베르투스 3세를 파문하였다.
그는 또 헨리 2세와 성 토마스 베케트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도록
교황청의 영국사절로 임명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가지 못하였다.
그는 만년에 나환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다가
1178년 6월 26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임종 때 훔베르투스가 찾아와 서로 화해하였다고 한다. |
성 펠라기우스(펠라지오)는
오마이야드의 대제인 아브드-아르-라만 3세가 코르도바를
통치하던 시대에 무어인들의 손에 죽었다.
그는 이때 10살의 소년이었다.
관리들은 이 소년의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하여 좋은 옷과 돈을 주고
훌륭한 말을 타게 해주었으나, 펠라기우스는
“모든 것이 다 싫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하며 끝까지 버티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여섯 시간 동안의 모진 고문을 견디다가 숨졌다.
그의 유해는 967년 레온(Leon)으로 모셨다가 985년에
다시 오비에도로 옮겨 안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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