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6월 19일 聖女율리아나, 聖로무알도 님..등

H-Simon 2010. 6. 18. 20:28

 

 

6월 19일(토)

聖女율리아나, 聖로무알도 님..
 

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Juliana Falcon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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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아나 팔코네리아(6.19)
 
 
성인명 율리아나 팔코네리아(Juliana Falconeria)
축일 6월 1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270-1341년
같은이름 율리안나, 줄리아나, 쥴리아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열심한 신자인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난 성녀 율리아나 팔코네리아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숙부

 알렉시우스 팔코니에리와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피렌체에서 안눈시아타로 불릴 정도로

교회 일에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율리아나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그녀는 이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성녀 율리아나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였던

필리푸스 베니티우스(Philippus Benitius)의 권유에 따라 사촌인 요안나와

필리푸스의 누이와 함께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제3회원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함께 병자들을 돌보고 소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1304년에 교황 베네딕투스 11세는 그녀가 설립한 공동체를

정식 수녀회로 허가하였다.

성녀 율리아나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결국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사망하기 전의 얼마 동안 그녀는 위궤양으로 절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영성체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청을 받고 한 신부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가슴 위에

성체를 올려놓아 주었는데,

그 순간 성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1341년 6월 19일 성녀 율리아나가 사망한 후,

그녀의 살갗에 어떤 표지가 새겨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678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는 율리아나에 대해 행해지던 공경을

정식으로 허가하였다.

그리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로무알도(6.19)
 
 
성인명 로무알도(Romuald)
축일 6월 1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수도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951?-1027년
같은이름 로무알두스, 로무알드

필리포 파스칼리의 성 로무알도(Romualdus)의 환시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의 오스티네 귀족 출신인 성 로무알두스는

부친의 살인 사건 때문에 클라세의 산 아폴리나레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가, 20여세 때에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더욱 엄격한 생활을 하려고 수도원을 떠나 베네치아 교외에 살던

마리누스(Marinus)라 부르는 은수자의 제자가 되었다.

978년경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인 성 베드로 우르세올루스(축일; 1월 10일)

마리누스와 성 로무알두스를 쿡사(Cuxa)로 데리고 와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게 하자, 이들은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은수자로 살았다.

   그 후 그는 부친이 회개하여 수도자가 되었음을 알고

부친을 만나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갔으며,

이때 오토 3세 황제는 그를 산 아폴리나레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2년 뒤에 사임하고는

페레움(Pereum) 교외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 헝가리의 마자르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다가 강제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고령에 따른 질병으로 인하여 1027년 6월 19일

파비아노 교외의 발 디 카스트로(Val di Castro)에서 운명하였다.

그가 세운 다섯 개의 은둔소들 가운데 카마돌리에 세운 것은 후일

카말돌리회의 모원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