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5월 7일 聖아우구스티노 로스첼리, 聖女로사님..등
H-Simon
2010. 5. 6. 16:44
5월 7일(금)
聖아우구스티노 로스첼리, 聖女로사님..등

성 아우구스티노 로스첼리(Augustine Rosc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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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 로스첼리는 1818년 7월 27일
이탈리아 카사르자 리구레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나 명예에 있어서 축복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하느님께서 그에게 덕이 높은 부모와 총명함
그리고 진실한 친구를 허락하셨다.
그는 고요한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에서 가족의 양을 치며 성장했고,
그의 영혼은 기도에 열려 있었으며
그의 마음 또한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려졌다.
16살 때인 1835년 5월 그는 자신이 사제직에로 불림을 받았다는
소명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농부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소는 그의 기도생활과
너그러운 사람들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제노바에서 공부를 하고 1846년 9월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의 첫 임지는 산 마르틴 달바로(Saint Martin d'Albaro) 성당이었다.
8년 후 그는 위로의 성당으로 이동하여 고해성사를 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제노바에서 그는 지원을 받지 못하여 굶주림이나 매춘 생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가족조차 없는 젊은 여성들을 교육하는 기숙학교를 만들었다.
1876년에는 무염(無染) 수녀회를 창설하여 이 기관과 그가 창설한
다른 기관들을 운영하게 하였다.
이러한 자선행위와 더불어 1874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방 고아원의 지도신부로 임명되었다.
그는 22년간 이 소임을 수행하며 교정 사목을 병행하여
사형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1902년 5월 7일 선종한 그는 1995년 5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1년 6월 1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 도미티아누스는 벨기에 뫼즈 계곡 위이 지방의 수호성인이다.
그의 유해는 고색창연한 이 지방의 성모 성당에 모셔져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프랑스 태생인 그는 통그레스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후에
그의 주교좌가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로 옮겨졌다.
549년의 오를레앙(Orleans) 시노드에서 그는 자신의 노련한 솜씨를
발휘하여 이교도들의 교리를 정확하게 배척하는데 큰 기여를 하여
명성을 떨쳤다.
그는 뫼즈 계곡에서 주로 복음을 선포하여 수많은 이교인들을
개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구 내에 많은 본당과 구호소를 지어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몇 차례에 걸쳐 덮친 기근 때마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보았고, 또 권력자와 부유한 자들을 설득하여
무사히 기근을 넘기게 하여 큰 존경을 받았다.
또 성 도미티아누스가 가공할만한 괴물을 퇴치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이 괴물은 위이 지방 강물에 독을 뿜음으로써
큰 재앙을 불러일으킨 용이었다고 한다. |
이탈리아 비테르보 태생인 성녀 로사 베네리니는
그곳의 의사이던 고데프리두스 베네리니의 딸이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한 젊은이가 죽은 후에
그녀는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이번에는 부친을 잃음으로써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성녀 로사 베네리니는 주변의 처녀와 부인들을 모아 저녁마다
로사리오 기도를 가르치는 등 종교 교육에 헌신적이었다.
그녀는 예수회원인 이냐시오 마르티넬리 신부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그 사제는 그녀가 '세속 안에서의' 교사가 되는 것을 주님의 뜻으로
알아듣고 그렇게 인도한 것이다.
1685년 그녀는 두 사람의 지원자와 함께 비테르보에 여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명성은 퍼져나갔고, 급기야는 바르바리고 추기경의 초청과
큰 도움으로 몬테피아스코네에 교사 훈련원을 세우게 되었다.
여기서 그녀는 성녀 루치아 필립피니(Lucia Filippini, 3월 25일)를 만나
'자비로운 교사회'를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이들은 '베네리니 수녀'들로 알려져 있다.
1728년 5월 7일 로마에서 선종한 성녀 로사 베네리니는
1952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이탈리아의 스폴레토에서 태어난 성 세레니쿠스와
성 세레누스(세레노)는 형제지간으로 가족과 모든 소유물을
포기한 채 로마(Roma)를 여행하였다.
사도들의 무덤 앞에서 기도할 때 그들은 이상한 사람의 인도를 받고
로마에서 베네딕토회의 규칙에 따라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이상한 사람은 또 다시 그들을 프랑스의 알프스를 넘어
새로운 곳으로 인도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샤르니숲에 은둔소를 세웠는데,
그들을 인도한 사람은 천사였다고 한다.
그들은 외부 세계와 절연한 상태에서 엄격한 자기훈련을 했으나
그들의 성덕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짐에 따라 방문객들이 찾아들었다.
그래서 성 세레니쿠스는 더욱 고요한 곳을 찾아 사르트 강변으로
갔으나 곧 큰 공동체를 이룰 만큼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결국 그는 그들의 영적 안내자가 되어 시편 전부를 매일 암송하는 법을
가르쳤고, 로마의 성무일도에다 베네딕토회의 성무일도를 덧붙여
사용하는 등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따랐다.
성 세레니쿠스는 669년경에 운명하였다.
한편 성 세레누스는 샤르니 숲의 은둔소에서 환시, 탈혼, 기적 등의
초자연적 은혜를 받고 평생을 지내다가 연로한 나이 때문에 선종하였다.
☞ 7......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근방 발레 도냐에서 태어난
알베르투스(알베르토)는 시골 농부였다.
그는 고향 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신심 깊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다가
도미니코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었다.
그는 아내와 친척들의 핀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꾸준히 도와주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다음 그는 아버지의 농장을 떠나
순례의 길에 올랐다.
그는 로마는 9번, 예루살렘은 1번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무려 8번이나 찾았다.
그는 순례 중에 일하면서 얻은 수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찬미가를 부르거나 시편을 외우면서
순례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크레모나로 이사한 알베르투스는 그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평범한 시골농부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뚜렷이 느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48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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