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4월13일 福女마르가리타, 聖마르티노1세님 ..등

H-Simon 2010. 4. 12. 15:26

 

 
4월13일(화)
福女마르가리타, 聖마르티노1세님 ..등

  

 

치타 디 카스텔로의 복녀 마르가리타(Margarita)-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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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귀노코 Guinochus 4월 13일 주교 스코틀랜드(Scotland) +838년
2 다다 Dadas 4월 13일 순교자   +303년
3 복녀 마르가리타 **  Margaret 4월 13일 동정녀 치타디카스텔로(Citta di Castello) +1320년
4 마르시오 Martius 4월 13일 수도원장   +530년경
5 마르티노 1세**  Martin I 4월 13일 교황,순교자   +655년
6 막시모 Maximus 4월 13일 독서자,순교자   +303년
7 성녀 아가토니카 **  Agathonica 4월 13일 순교자   +170/250년?
8 아가토도로 ☞7 Agathodorus 4월 13일 노예,순교자   +170/250년?
9 복자 야고보 James 4월 13일 수도원장 체르탈도(Certaldo) +1392년
10 복자 에드워드 케터릭 Edward Catherick 4월 13일 순교자   +1642년
11 복자 요한 록우드 John Lockwood 4월 13일 순교자   +1642년
12 우르소 Ursus 4월 13일 주교 라벤나(Ravenna) +396년
13 복녀 이다**  Ida 4월 13일 동정녀 루뱅(Louvain) +1300년?
14 성녀 이다 Ida 4월 13일 과부 불로뉴(Boulogne) +1113년
15 카르포☞7 Carpus 4월 13일 주교,순교자 고르두스(Gordus) +170/250년?
16 퀸틸리아노 Quintilianus 4월 13일 순교자   +303년
17 파필로 ☞7 Papylus 4월 13일 부제,순교자 티아디라(Thyatira) +170/250년?
18 헤르메네질도**  Hermenegild 4월 13일 왕자,순교자   +585년

총 18 성인

 

   ▶마르가리타(4.13)
 
성인명 마르가리타(Margaret)
축일 4월 13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치타디카스텔로(Citta di Castello)
활동연도 +1320년
같은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치타 디 카스텔로의 복녀 마르가리타(Margarita)

 

   1293년경 치타디카스텔로의 몇몇 부인들이 본당으로 기도하러 갔다가

부모로부터 버려진 6-7세 된 여아를 발견했는데 불행하게도 맹인이었다.

이 맹인 소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이집 저집에서 보호받다가

마침내 어느 수녀원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수녀원이 그리 성스럽지 못하여 그녀를 학대하자

어느 부부가 제공한 조그마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13세 때 그녀는 도미니코회의 3회원이 되면서부터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봉헌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치유의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이들의 병을 고쳐주었으며,

부모가 일터로 가고 없는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조그마한 학교를 세우고 그들을 교육했는데, 자신이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활약하였다.

 마르가리타는 33세의 나이로 운명할 때까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죽은 이후 비범한 인물로서 높은 공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609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마르티노 1세(4.13)  
 
 
성인명 마르티노 1세(Martin I)
축일 4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55년
같은이름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의 토디 출신인 성 마르티누스(마르티노)

로마(Roma)로 온 뒤로부터 그의 학덕과 신심이 널리 알려졌다.

부제 때 그는 교황 테오도루스 1세의 교황대사로서 콘스탄티노플에 갔었고,

649년 7월 21일에 그를 승계하여 착좌하였다.

그는 즉위한 해에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하여 이단인 단의설을 단죄하고,

헤라클리우스의 황제 칙령을 견책하였다. 

   마르티누스 교황이 이를 비방하자 단의설주의자이던 황제 콘스탄스는

화가 나서 새 총독으로 테오도루스 칼리오파스를 로마로 파견하여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끌고 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교황은 병중이었으나 라테라노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황제의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653년 가을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3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그 후 그는 크림 반도의 케르소네수스로 유배를 가서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잔혹한 대우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655년 9월 16일 사망하였다.

그래서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아가토니카(4.13)  
 
 
성인명 아가토니카(Agathonica)
축일 4월 13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70/250년?
같은이름 아가또니까, 아가토니까

 

성녀 아가토니카(Agathonica)와 동료 순교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에 살았던 성녀 아가토니카는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란 이유 때문에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가서

이교신상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권고를 죽음으로써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형리들이 그녀와 아이들을 떼어 놓고 협박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이들은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녀의 용모가 빼어났으므로 유혹의 손길까지 뻗히고 또 옷도 벗겼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당한 후 그녀는

 “주님, 저는 주님을 증거하려 하오니, 주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하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룩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한편 에우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소아시아 리디아 왕국 고르두스의 주교인 성 카르푸스(Carpus)와

티아디라(Thyatira)의 부제인 성 파필루스(Papylus)

그리고 그들의 노예인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가

성녀 아가토니카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페르가몬에서 로마 총독 발레리우스 앞에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산채로 불 태워지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녀 아가토니카는 성 파필루스 부제의 누이라고 한다.

 

☞ 8, 15, 17.....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이다(4.13)
 
 
성인명 이다(Ida)
축일 4월 13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루뱅(Louvain)
활동연도 +1300년?
같은이름  
 


   이다(Ida)벨기에 루뱅의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하느님의 특은이 여러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한다.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당한 고통이 많았지만 그녀는 충만한 애덕을 실천하고

또 극도로 엄격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녀는 성모상 앞에 장궤할 때마다 성모송 한 번씩 바쳤는데

어느 날에는 하루에 천 번이나 하였다.

또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심이 뛰어나 그녀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는 오상 성흔을 받았으나 늘 이를 숨겼다.

 

뿐만 아니라 성체 신심이 투철하여 병이 들어 꼼짝할 수 없는 경우에도

기적적으로 성체를 모셨다고 전기 작가는 기록하였다.

그녀가 만년에 시토회에 들어갔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할 수는 없다.

 

 

 

 

 

    ▶헤르메네질도(4.13)
 
 
성인명 헤르메네질도(Hermenegild)
축일 4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왕자,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585년
같은이름

헤르메네길도, 헤르메네길두스, 헤르메네길드, 헤르메네길트, 헤르메네질두스,

 헤르메네질드

 


   성 헤르메네길두스(헤르메네질도)는 에스파냐 서고트족의

레오비길두스 왕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인 테오도시아의 아들로서

아리우스(Arius) 이단에 젖어 있던 부친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열렬한 정통파 신앙인인 아우스트라시아의 시제베르트왕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을 되찾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준 모든 소유와 지위를

박탈하려 하였다.

그러자 헤르메네길두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며 아리우스 이단과의

투쟁을 선언하고 전투에 들어갔다.

 

그러나 차츰차츰 아들의 입장을 이해한 부친이 화해하고

그전의 지위를 회복시켰으나,

계모로 들어선 고스빈다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계략으로 그를 투옥시키고 군인들을 보내어 살해하였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을 죽음으로 거부하여 정통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