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3월14일 聖女마틸다, 聖女바울리나님..등
H-Simon
2010. 3. 13. 20:49
3월14일(사순제4주일)
聖女마틸다, 聖女바울리나님..등 
성녀 마틸다(Mathil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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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프리슬란드-덴마크의 귀족 가문인 그라펜 디트리히의 딸로 태어난
성녀 마틸다는 909년 작센(Sachsen)의 공작인 하인리히와 결혼했다.
919년 하인리히가 독일의 하인리히 1세 국왕이 되자 독일 여왕이 된 그녀는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들을 두었는데,
훗날 독일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오토(Otto),
프랑스의 루이 4세와 결혼한 게르베르가(Gerberga),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인 하인리히,
프랑스 카페(Capet) 왕조의 위그 카페의 어머니인 하드비히(Hadwig),
그리고 쾰른(Koln)의 대주교가 된 성 브루노(Bruno, 10월 11일)가 그들이다.
그녀는 32세에 과부가 되었는데, 이때 아들인 오토 1세로부터 극심한
푸대접을 받았다. 그
러나 그녀는 신심이 뛰어났으므로 자선사업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동생 하인리히가 형인 오토 1세에게 반기를 드는 판국이니
그녀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그녀는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 곳이나 세웠고,
만년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그녀의 아들 오토 1세와 화해를 하고
968년 3월 24일 사망하여 궤틀린부르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과 교회의 후원자로서 큰 공경을 받는다. |
독일의 공작부인이었던 성녀 바울리나는 남편이 죽은 뒤에 그녀의
아들인 베르너(Werner)와 함께 젤에 파울린젤레(Paulinzelle)로 알려진
남녀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1107년 독일에서 선종하였다. |
레오 황제의 통치 기간에는 제국이 늘 이슬람의 침공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시국은 평안할 날이 없었고 제국과 이슬람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황제는 신전에 희생물 바치는 것을 반대하는 자는 무조건 투옥하거나 유배를
보내도록 명하였고, 아랍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로마 귀족의 아들인 성 에우티키우스와 동료들이 아랍인들에 의하여
투옥되었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감옥생활만 하였으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라는 강요를 거절하자마자 무서운 고문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에우스타티우스(Eustathi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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