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3월11일 정의배 마르코, 우세영 알렉시오님 순교하신 날
H-Simon
2010. 3. 10. 19:53
3월11일
정의배 마르코, 우세영 알렉시오님 순교하신 날

자비로우신 아버지,
천지가 어둡고 외로움뿐이던 때,
예수 마리아만을 외치며
십자가 성혈 제단에 뿌린
순교자들의 피를
더욱 빛나게 하시어
이 세상을 비추는
횃불이 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iulio Cac
정의배 마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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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동(倉洞)에서 태어난 정의배 마르코님은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양 선교사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감동하여
곧 교리를 배우고 입교하였다.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고 주교가 입국한 뒤 서울 지역의 회장이 되어
20여 년 동안 헌신적으로 일하였고, 1854년에는 성영회를 맡아 고아들을
돌보기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2월 25일에 체포되었고,
3월 11일 프르티에(Pourthié, 신요안(申妖安)) 신부, 프티니콜라 (Petitnicolas, 박덕노(朴德老)) 신부, 그리고 우세영 알렉시오(禹世英)님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7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
우세영 알렉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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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필’로도 불렸던 우세영 알렉시오님은 황해도 서흥(瑞興) 향교 마을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우연히 알게 된 김 요한이라는 회장의
권면으로 관직의 뜻을 버리고 서울로 내려가, 정의배님에게 교리를 배우고
장(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뒤 부모의 반대를 인내와 열정으로 참아 내어 가족들을 입교시키고
신앙 생활을 위해 평안도 논재로 이사했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일어나자 2월 16일 이웃 마을인 고둔리 공소에서 유정률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평양 감영에서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곧 배교한 것을 후회하고 서울로 내려가 스승 정의배님을 만나러 갔다가,
이미 체포된 정의배님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같은 해 3월 11일 신 신부, 박 신부, 스승 정의배님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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