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7일-聖가브리엘 포센티, 聖女안나 퀸님..등
2월27일(토)
聖가브리엘 포센티, 聖女안나 퀸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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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성 가브리엘 포센티(Gabriel Possenti)의 서원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4살 때에 어머니를 잃고 큰누나 밑에서 자랐으나 그 누나가 콜레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부친이 스폴레토의 세액 사정관으로 임명되자 그는 예수 고난회에 입회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매우 지성적이며 능력이 뛰어났고, 문학과 예술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신앙심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높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여 수련자가 되었다. 그리고 1857년 9월 22일 첫 서약을 하면서 그에게는 '성모 통고의 가브리엘'(Gabriel a Virgine Perdolente)이라는 수도명이 주어졌다. 그는 이때부터 사소한 일에서도 완덕을 얻으려는 특별한 노력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의 밝은 성품, 기도 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규칙 엄수,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으려는 열망이 그의 모든 생활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짧은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덕을 닦을 수 있었다. 수도생활로 체력이 소진되어, 1862년 2월 27일 이탈리아 테라모 지방의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수도회가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다. 이후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성녀 젬마 갈가니(축일; 4월 11일)가 그에게 기도함으로써 치유된 일도 있었다. 시복되었고, 1920년 3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아브르초 지방의 수호성인이며, 청소년, 특히 수련자와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가톨릭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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