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8일-福者 안젤리코, 聖 시메온님..등
2월18일(목)
福者 안젤리코, 聖 시메온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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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은 프라 안젤리코는 1417년 형 베네데토와 함께 피렌체의 한 필사본 작업장에서 일을 했다. 그는 20세에 피에졸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기도생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이때 안젤리코는 조반니 다 피에졸레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했고, 1436년부터는 그의 절정기에 속하는 작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 1445년에는 교황의 부름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내의 여러 곳에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고, 1447년에는 오르비에토 주교좌성당의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코렐라의 도미니코 신부가 그를 ‘천사 같은’화가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프라’는 수도자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프라테’(frate)의 약어이다. 그는 재능 있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안젤리코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청렴한 생활을 했다. 그는 당시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자신을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려 했을 때 극구 사양하였다. 로마로 왔고 그곳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1455년 2월 18일 선종하여 인근의 산타 마리아 델라 미네르바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1982년 10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와 동등한 전례가 공식적으로 승인되었으며, 이어 1984년 같은 교황에 의해 예술가와 미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파레고리우스가 리키아의 파타라에서 순교할 때 성 레오는 서글픈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리키아의 관리는 모든 주민들로 하여금 이교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칙령을 내렸는데, 성 레오는 친구 순교자의 무덤을 다녀오면서 이방인들의 신전을 지나쳐 집으로 왔으나, 꿈속에서 하느님이 그를 부르시어 친구와 같은 고난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다시 친구의 무덤을 찾은 뒤 용감하게 거리로 나가서 이교신상 앞에 켜놓은 촛불들을 내동댕이쳤다. 그는 신성 모독죄로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 후에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 19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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