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2월16일*福女필립바 마레리아, 福者베르나르도님..등*
H-Simon
2010. 2. 15. 15:30
2월16일(화)
*福女필립바 마레리아, 福者베르나르도님..등*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필리파 마레리아(또는 필립바)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의 치콜리(Cicoli)
태생으로 그녀의 집안은 아브르초의 주요 지주가문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신심이 깊은 부부였기 때문에 인근 지방에 설교하러 온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10월 4일)를 자기 집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필리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완전히 본받으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가 그녀의 결혼을 서두르자 필리파는 삭발을 한 후 보기 흉한 옷을
입고는 몸을 숨겨버렸다.
이윽고 그녀는 집을 나와서 마레리아 인근의 한 산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에서 거룩한 한 작은 형제회 회원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유명한 토디(Todi)의 루지에로(Ruggiero, 1월 28일) 수사였다.
그녀는 리에티(Rieti)에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의 규칙을 채택한
첫 번째 프란치스코 수녀원을 설립하였고, 원장이 되어 많은 동료들을
지도하였다.
철저한 가난생활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1236년 그녀는 중병에 걸린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리에티에서 운명하였다. |
베르나르두스 스캄마카는 시칠리아(Sicilia) 카타니아(Catania)의 귀족 가문
태생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아주 난폭한 아내를 얻어 고생하였고, 또 말다툼 끝에
그의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서 그는 하느님께 완전히 회두하였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지난날의 잘못을 씻는 길은 순종과 겸손으로 살아야만 가능하리라
굳게 믿었다.
이렇듯 그의 태도가 전혀 달라졌기 때문에 새들이 그의 팔에 내려앉아
노래하였다고 전해져 온다.
그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거나 혹은 방에 혼자 있을 때에는 가끔씩 찬란한
빛이 비쳤으며, 그의 곁에는 천상 아기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고 한다.
그는 1487년 1월 11일 카타니아에서 운명했는데, 그의 사후에도 이런 비슷한
기적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5년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도미니코회에서는 1월 1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
필레몬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편지 1장 10-18절에
의하면 성 오네시무스는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의
콜로새에서 살던 성 필레몬(Philemon, 11월 22일)의 노예였다.
그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에 바오로를 만나
세례를 받았으며, 사도 바오로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다.
또한 바오로는 그를 성 필레몬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성 오네시무스를
이제 노예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주도록 요청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성 필레몬에게 말한 그대로 자신도 행동했고,
또 “성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로서” 인정하였다(골로 4,7-9).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의하면 그 후 성 오네시무스는
말씀의 설교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페수스의 주교까지 되었으며,
로마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여 로마 순교록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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