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2월12일*聖루단, 福女흠벨리나님..등*
H-Simon
2010. 2. 12. 10:03
2월12일(금)
*聖루단, 福女흠벨리나님..등*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프랑스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의
여동생인 훔벨리나는 프랑스의 디종에서 태어나 귀족이던 귀 드 마르시와
결혼하였고 귀족적인 생활을 하며 살았다.
어느 날 그녀가 오빠를 만났을 때 화려한 옷과 생활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되자 그녀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마음으로부터 회개의 빛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몇 년 후 그녀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서 줄리(Jully)의 베네딕토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곳의 원장이던 엘리사벳(Elisabeth)을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으며, 엄격한 생활을 통하여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63년에 승인되었다. |
성 루단은 아마도 스코틀랜드의 왕자였는데, 부왕의 서거 후에 주로 자선활동에 막대한 유산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순례자를 위해 거대한 요양소를 짓고 걸인이나 병약자들을 보살폈으며,
자신도 예루살렘을 순례하였다.
한 번은 그가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에
스트라스부르의 어느 길가에서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 느릅나무 밑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곧 죽는다는 계시를 받고는 즉시 일어나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 전에는 죽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의 기도는 즉시 응답이 왔는데, 한 천사가 성체를 영해주었다고 한다.
그가 죽자 기적적으로 그 지역의 모든 성당의 종들이 울렸고,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인근에 안장되었으나 30년 전쟁 중에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는 루덴(Luden)으로도 불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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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
마리나(Marina) |
축일 |
2월 12일 |
성인구분 |
성녀 |
신분 |
동정녀 |
활동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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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연도 |
+연대미상 |
같은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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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나는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에우게니우스란
사람의 딸이다. 그녀의 부친은 홀아비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자 친척집에 맡겨둔 어린 딸 마리나 생각에 마음이
헷갈리게 되자, 원장에게 그 아이는 마리누스라는 남자 아이이니 자신과
함께 수도원에서 살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부친과 사별할 때까지 그러니까 17세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남자 수도자로서 계속하여 생활했는데, 어느 여인숙 주인의
딸이 마리누스가 자신에게 임신시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때문에 그녀는 수도원 밖에서 걸식을 하며 살았고,
그 처녀는 아이를 낳아서 마리누스의 아들이니 돌보라고 맡기고 떠났다.
성녀 마리나는 그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끝까지 인내하였다.
5년 후 원장은 마리누스의 놀라운 인내와 겸손을 인정하여 5세 된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서 다시금 살게 했으나 매우 힘든 일만 시켰다.
그 얼마 후 마리누스는 운명하였고,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 마리누스가
여성임이 밝혀졌다.
원장 이하 모든 수도자들과 시민들은 그녀의 위대한 용덕과 인내심을 찬양하였고
엄숙한 장례가 거행되었다. |
타데오 가디의 성 율리아노(Julianus) 자선가 |
전설에 의하면 성 율리아누스자선가는 귀족이었는데, 실수로 인하여
그는 부친과 모친을 죽였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이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그는 아내와 함께 강을 건너는 여울 곁에
살면서
여행자들에게 도움을 베풀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어느 날 추위로 인하여 동사 직전에 있는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죄를 용서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하여 자기의 침대에 나환자를 잠재우기도 하였다.
그는 호텔 경영자, 여행자 그리고 뱃사공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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