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2월5일*聖女 아가타님..등*

H-Simon 2010. 2. 4. 13:29

 

 
2월5일(금) 
*聖女 아가타님..등*
                             

  

  

 

 

카타니아의 성녀 아가타(Aga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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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도미니카 Dominica 2월 5일 순교자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710년경
2 모데스토 Modestus 2월 5일 주교 잘츠부르크(Salzburg) +722년
3 베르툴포 ** Bertulf 2월 5일 수도원장   +705년경
4 보달로 Vodalus 2월 5일 은수자   +720년경
5 성녀 아가타 ** Agatha 2월 5일 동정 순교자 카타니아(Catania) +249/251년?
6 아그리콜라 Agricola 2월 5일 주교 통그레스(Tongres) +420년
7 성녀 아델라이드 Adelaide 2월 5일 수녀원장 빌리히(Willich) +1015년경
8 아브라함 Abraham 2월 5일 주교,순교자 아르벨라(Arbela) +345년
9 아비토 ** Avitus 2월 5일 주교 비엔(Vienne) +519년경
10 알부이노 Albuinus 2월 5일 주교 브릭센(Brixen) +11세기
11 이시도로 Isidore 2월 5일 군인,순교자   +연대미상
12 인드락토 Indractus 2월 5일 순교자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710년경
13 인제누이노 Ingenuinus 2월 5일 주교 브릭센(Brixen) +7세기

 

                              

 

 

 

  

  ▶아가타(2.5)
 
성인명 아가타(Agatha)
축일 2월 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카타니아(Catania)
활동연도 +249/251년?
같은이름 아가다, 아가따

 

성 마리노(Marinus)와 성녀 아가타(Agatha)


   불확실한 전설이지만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혹은 팔레르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신심이 깊어 하느님께 스스로 정결을

서원하였다고 한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기간에 그 지방의 집정관이던 퀸티아누스가 그녀를 탐해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다.

그녀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퀸티아누스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그녀를 매음굴로 보냈으며,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 죽였다고 전해온다.

 

교회미술에서 그녀는 보통 한 쌍의 집게나 접시에 담은 그녀의 가슴으로

묘사되었는데,  후일 이것이 잘못 전해져 접시 위의 빵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성녀 아가타의 축일에는 빵을 축성하는 관습이 내려온다.

성녀 아가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 만드는 사람, 유리 제조공, 광부, 알프스 등반

안내자,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자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베르툴포(2.5)
 
성인명 베르툴포(Bertulf)
축일 2월 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705년경
같은이름 베르뚤포, 베르뚤푸스, 베르뚤프, 베르툴, 베르툴푸스, 베르툴프
 


   독일의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성 베르툴푸스는 어려서 부모들이 플랑드르로

이사 갔기 때문에 그 지방의 그리스도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세례를 받았는데, 이때 그리스도인 백작인 밤베르트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백작은 그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는 백작의 일들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처리하여 신임을 얻었기에

가난한 이들에게 주인의 재산까지 나누어 줄 수 있게끔 되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무고하였지만 백작 부부는 그를 더욱

신임하여 로마(Roma) 순례 길에 오를 때에도 그를 데리고 갔다.

그 순례 여행은 알프스 산을 넘는 위험이 있었는데,

성 베르툴푸스는 기적적인 노력으로 폭풍우와 강도들을 이겨내어 안전하게

백작 부부를 인도했다.

그래서 백작은 그를 아들처럼 여기고 유산 상속자로 정하였다.

백작의 사후 성 베르툴푸스는 사제가 되었고, 백작의 유산으로 4개의 성당을

지은 후 은퇴하여 자신이 랑티에 세운 수도원의 원장으로 지내다가

아르투아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베르툴로도 불린다.

 

 

 

 

 

  ▶아비토(2.5)
 
성인명 아비토(Avitus)
축일 2월 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비엔(Vienne)
활동연도 +519년경
같은이름 아비또, 아비뚜스, 아비투스

 


   성 알치무스 엑디키우스 아비투스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사람으로 그의 부친

성 이시키우스는 성 마메르투스(Mamertus, 5월 11일) 서거 후에 비엔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그 후 성 아비투스가 490년에 부친을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파비아(Pavia)의 성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1월 21일)에 의하면

성 아비투스는 지식의 보고였고,

아리우스파의 부르고뉴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 와서 많은 리구리아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에는 대속금을 지불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구출하였다.

프랑스 왕 클로비스가 비신자일 때에도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그의 작품들이 유실되었지만, 다섯 편의 시와 수녀들의 동정에

관한 글 그리고 “인류의 영성에 대하여”란 제목이 붙은 글은 남아 있다.

이외에 78통의 서한과 2권의 강론집, 기타 25종의 유품은 그의 능력과 성덕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마디로 성 아비투스는 신학자이기보다는 서간문의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