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월14일(목) 聖女마크리나, 聖펠릭스님..등

H-Simon 2010. 1. 13. 12:18

 

 
1월14일(목)  
           聖女마크리나, 聖펠릭스님..등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다시오 Datius 1월 14일 주교 밀라노(Milano) +552년
2 성녀 마크리나 ** Macrina 1월 14일 개종자   270-340년
3 말라키 ** Malachy 1월 14일 구약인물,예언자    
4 사바 ** Sabas 1월 14일 대주교 세르비아(Serbia) 1174-1237년
5 복자 아마데오 Amadeus 1월 14일 수도승 클레르몽(Clermont) +1150년경
6 에우프라시오 Euphrasius 1월 14일 주교   +연대미상
7 복자 오도 Odo 1월 14일 은수자 노바라(Novara) 1105-1200년
8 펠릭스 ** Felix 1월 14일 신부,증거자 놀라(Nola) +260년경
9 펠릭스 Felix 1월 14일 신부 로마(Roma) +연대미상
총 9 성인

                   

 

 

 마크리나(1.14)
 
성인명 마크리나(Macrina)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개종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70-340년
같은이름 마끄리나

 

성녀 마크리나(Macrina)

   성녀 마크리나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의 할머니로서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마크리나 부부는 소아시아의 네오카이사레아와 폰투스등지에서 살았는데,
갈레리우스와 막시미누스의 황제의 박해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들은 박해자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숲 속에서 7년이나 은거했으므로
수없이 굶주렸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마크리나가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
(Gregorius Thaumaturgus, 11월 17일)의 제자였다고 한다.

 

 

 

 

 

 ▶말라키(1.14)
 
성인명 말라키(Malachy)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말라기, 말라끼, 말라끼아스, 말라키아스

 

성 말라키(Malachias) 예언자

   성 말라키는 구약성서 열두 편의 소예언서 중 마지막 책인 말라키서의
저자로 등장한다.
 말라키서는 “야훼께서 말라키를 시켜 이스라엘에 내리신 경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키서는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가치있는 증언을 수록하고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함께 유배 시대 이후의 예언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말라키’라는 이름은 말라키서 1장 1절 표제에만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말라기는 ‘나의 특사’ 또는 ‘나의 천사’라는 뜻이다.

   4세기의 유대 전승들을 모은 “예언자들의 삶”(Lives of the Prophets)에는
말라키가 즈불룬의 소파(Sopha) 출신으로 레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승에는, 말라키가 신앙심이 깊고 온유하여 백성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는데,
‘보는 것이 공정하여’ 말라키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한다.
가(假)에피파니우스와 다른 교부들은 이 전승을 받아들였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전승들이 기원이 늦고 비현실적이어서 예언자의
생애에 관한 증명으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만 예언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인간 죄의 심각함
(2.17-3,4; 3,6-7. 13-20)을 파악한 인격적인 신앙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와 이혼(2,10-16), 사회 불의(3,5)에 반대한
매우 헌신적이고 통합적인 인물이었다(A.E. Hill).
그는 성전과 사제와 희생 제사 등 종교의 형식에 대한 외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설교하였지만,
단지 형식주의자나 예식주의자가 아니고 윤리적, 영성적으로 알려져 있다.

 

 

 

 

 

 ▶사바(1.14)
 
성인명 사바(Sabas)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대주교
활동지역 세르비아(Serbia)
활동연도 1174-1237년
같은이름 사바스, 싸바스
 
   중세의 세르비아 왕국인 네만야(Nemanya) 왕조를 세운 스테파누스 1세의
셋째 아들인 성 사바(Sabas)는 17세 때에 그리스의 아토스 산(Mount Atho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세르비아 수도자들을 위하여 아토스 산에 수도원을
따로 세운 후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다가 1207년 그의 형제인 스테파누스 2세와 불칸(Vulkan) 사이에 불화와
내전이 발발했을 때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었다.

   수많은 수도자들과 함께 돌아온 그는 스투데니트사(Studenitsa) 수도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개혁, 특히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여
땅에 떨어졌던 신앙과 교육이 부흥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력은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 일으켰고 교회 또한 크게 융성하게
하였다.
그는 방인사제와 주교를 존중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맡김으로써
더욱 발전시키는 덕을 지녔다.
그는 두 차례나 성지를 순례했는데, 두 번째 순례 중 불가리아의 티르노보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사바(Sava)로도 불린다.
  

 

 ▶펠릭스(1.14)
 
성인명 펠릭스(Felix)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증거자
활동지역 놀라(Nola)
활동연도 +260년경
같은이름  

 

   시리아인으로서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인 놀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성 막시무스(Maximus, 1월 15일)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성 막시무스 주교의 보좌로 활약하다가 그의 스승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으로 갔을 때 스승 대신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 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마침내 그는 주교에게 갈 수 있었다.
성 펠릭스가 성 막시무스 주교를 찾아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데키우스 황제 사후에도 성 펠릭스는 수배 인물이었으나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에 박해가 그치자
다시 사제 직무로 돌아왔다.
성 막시무스 주교가 서거했을 때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주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자신의 선배 사제인 퀸투스(Quintus)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260년 1월 14일에 선종하였는데, 서거한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성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중
대표적인 곳이 놀라에 세워진 성당으로, 이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선임자인 성 펠릭스의 무덤 위에 큰 성당을 지어 성서 내용의 벽화로 내부를
장식하였고, 성인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수집, 정리하여 이후에 만들어진
전기의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