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25(수) 알렉산드리아의 聖女가타리나님..등

H-Simon 2009. 11. 24. 15:23

 

 
11월25(수)
        알렉산드리아의 聖女가타리나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가타리나 ** Catherine 11월 25일 동정 순교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310년경
2 메르쿠리오  Mercurius 11월 25일 군인,순교자   +250년경
3 모세 Moses 11월 25일 신부,순교자   +251년
4 에라스모 Erasmus 11월 25일 순교자 안티오키아(Antiochia) +연대미상
5 복녀 엘리사벳 ** Elizabeth 11월 25일 동정녀   1386-1420년
6 성녀 유쿤다 Jucunda 11월 25일 동정녀 레기오(Reggio) +466년
총 6 성인

 
 
 
 
 
    ▶가타리나(11.25)
 
성인명 가타리나(Catherine)
축일 11월 2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310년경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성녀 카타리나 

순교 직전 고요히 기도하는 성녀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10세기경부터 동방 교회에서 가장 높이 공경해오던
성인 중의 한 명이지만 성녀에 대한 자료는 분명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성녀 카타리나는 알렉산드리아의 상류 가정 출신으로 학식이 뛰어난
미모의 처녀였다고 한다.
그녀는 어떤 환시를 보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으며, 막센티우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키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는데, 이 놀랍고 뛰어난 논쟁으로 말미암아
50여 명의 이방인 철학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만일 배교할 의향만 있으면 황제와 결혼시켜 주겠다는 회유책을 거부하고
두 시간 동안 매를 맞은 뒤에 투옥되었다. 그녀의 독방에는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큰 못을 박은 바퀴에 의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구경꾼 여러 명은 그 바퀴에서 튕겨 나온 못에 의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녀의 굳은 신앙과 인내심은 수많은 군인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그중에서 2백여 명이 개종한 후 곧 참수를 당하였다.

   그로인해 마침내 분을 이기지 못한 관리들은 그녀를 참수하였다.
이때 그녀를 덮었던 수건에는 피가 아니라 우유가 묻어나왔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은 시나이 산으로 옮겨졌으며(천사에 의하여), 그곳에 정교회 수도원이 세워졌다.
지금도 이 수도원은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성녀 카타리나는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 5월 30일)가 들은 신비스런 목소리의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철학자, 처녀 그리고 설교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엘리사벳(11.25)
 
성인명 엘리사벳(Elizabeth)
축일 11월 25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386-1420년
같은이름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발트제에서 태어난 엘리사벳은 요한과 안나라 부르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천진난만하고 부드러운 천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착한 베시'로 알려졌다.
그녀가 14세 되던 해부터 고해신부인 콘라두스(Conradus)가 그녀의 생활을 지도하였고,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도록 추천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베를 짜는 어느 부인과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하였고,
콘라두스 신부의 도움으로 이 작은 공동체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일생동안 이 작은 공동체에서 지낸 그녀는 중세의 신비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고,
극도의 엄격한 생활과 환시 등으로 그녀의 성덕이 아주 높았음이 입증되었다.
특히 그녀는 수난 받으신 주님의 오상을 받았다.
가시관을 쓴 흔적이 뚜렷하고 매 맞은 자국이 선명하였는데, 성 금요일과 사순절 동안에는 선혈이 낭자하였다고 한다.
물론 그에 따른 고통도 극심하였다. 엘리사벳에 대한 공경은 1766년에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