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6일(금)福者 노니오와 聖 레오나르도님..등
H-Simon
2009. 11. 5. 11:46
11월6일(금)
福者 노니오와 聖 레오나르도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
누녜스로도 알려진 노니우스 알바레스 데 페레이라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교외
봄야르딘에서 태어났다. 17세 때에 결혼하였고, 1383년에는 포르투갈군의 지휘자가 되었다.
불과 23세의 나이로 아비스 기사들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들은 에스파냐의 통치를 벗어나기 위하여 반란을 일으켜 포르투갈을 건설하였다.
1422년 아내가 죽은 뒤에 그는 카르멜회 평수사가 되어 살다가 리스본에서 사망하였다.
그를 일컬어 '대원수'라 부르는 이유는 노니우스가 포르투갈의 국가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18년에 승인되었다. |
키프로스의 시카 마을에서 태어난 성 데메트리아누스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아내와 사별하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즉시 그의 신심과 치유 은사가 있음이 드러났고, 마침내 사제로 서품되어 복음 선포에
전력하였다. 그는 또 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자 지혜와 성덕으로 다스렸으며,
키트리(Khytri)의 주교좌가 공석이 되었을 때 주교로 임명되었다.
데메트리아누스는 거의 40년 동안 수도자로 살았으므로 주교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남다른 점들이 많았다. 특히 그는 친구들을 별로 사귀지 않고 거의 대부분을 암자에서 생활하였다.
그가 약 25년 동안 주교직에 있을 때 키프로스가 사라센의 침략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하였다. 성 데메트리아누스가 용감하게 침략자들을 찾아가 과감하게 협상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한 업적은 그의 놀라운 인품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그는 키프로스 제일의 성인이요 주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 레오나르두스는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가 기록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그는 프랑크 귀족으로서 성 레미기우스(Remigius, 10월 1일)에 의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는데, 국왕 클로비스 1세가 대부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오를레앙으로 가서 그곳의 미시(Micy) 수도원에서 얼마를 지내다가 리모주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을 손수 짓고 채소와 과일로 연명하면서 하느님만 관조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비스 국왕이 사냥을 왔다가 왕비가 죽을 곤경에 빠졌을 때,
그의 기도로 왕비의 목숨을 건지자 왕은 감사의 표시로 많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그는 이곳에다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곳이 노블락 수도원이다. 이때부터 그는 인근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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