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0월27일(화) 聖빈첸시오와 聖女사비나님..등

H-Simon 2009. 10. 26. 08:36

 

 
10월27일(화) 聖빈첸시오와 聖女사비나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가우디오소 Gaudiosus 10월 27일 주교,증거자 나폴리(Napoli) +455년
2 빈첸시오 ** Vincent 10월 27일 순교자   +303년경
3 성녀 사비나 ☞2 Sabina 10월 27일 순교자   +303년경
4 성녀 에로테이스 Erotheis 10월 27일 하녀,순교자   +304년
5 엘레스바안 Elesbaan 10월 27일 ,수도승 에티오피아(Ethiopia) +6세기
6 오테란 Otteran 10월 27일 선교사 이오나(Iona) +563년
7 성녀 카피톨리나 Capitolina 10월 27일 부인,순교자   +304년
8 성녀 크리스테타 ☞2 Christeta 10월 27일 순교자   +303년경
9 프루멘시오 ** Frumentius 10월 27일 주교 에티오피아(Ethiopia) +380년경
10 플로렌시오 Florentius 10월 27일 순교자 부르고뉴(Bourgogne) +3세기
총 10 성인

 

 

 

  ▶빈첸시오(10.27)
 
성인명 빈첸시오(Vincent)
축일 10월 2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03년경
같은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기록에 의하면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에스파냐의 아빌라에 살던 젊은 신자였다. 그 당시는 다키아누스 총독이 로마 제국이
붕괴되어 가는 중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명령했을 때였다.
그는 과거의 우상숭배가 아닌 진정한 종교, 바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모든 배교 요청을 거부하였다.
결국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감금되었으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삶에 감동한 경비병들이
개종하고 그의 자매인 성녀 사비나와 성녀 크리스테타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힘들게 알바에 도착했지만 모두 체포되어 채찍과 몽둥이로 맞고
아빌라에 감금되었다가 돌 사이에서 뭉개는 잔혹한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아빌라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 3, 8 번은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입니다.

 

 

 

    ▶프루멘시오(10.27)
 
성인명 프루멘시오(Frumentius)
축일 10월 2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에티오피아(Ethiopia)
활동연도 +380년경
같은이름 프루멘시우스, 프루멘씨오, 프루멘씨우스, 프루멘티오, 프루멘티우스

 


   성 프루멘티우스(또는 프루멘시오)와 또 다른 청년인 아이데시우스(Aedesius)는 형제지간으로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해안지대의 고대 지명)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티레
태생이며, 에티오피아의 첫 번째 복음 선포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 당시 인물인 루피누스(Rufinus)에 따르면 성 프루멘티우스와 아이데시우스는
티레의 철학자인 메로피우스(Meropius)의 젊은 문하생이었다.
메로피우스는 330년경 아라비아 해안을 따라 항해할 것을 결정하였는데 이 두 젊은 제자들이
스승과 동반하였다.
그들의 여행은 잘 이루어졌고 돌아오는 길에 신선한 음식을 구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 정박했는데,
그곳에서 선원들과 그 지방 사람들과 싸움이 나서 스승과 모든 선원들이 살해당했다.
그런데 이 두 형제는 당시 배를 떠나 있어서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체포되어 에티오피아의 고대 수도인 악숨에 있는 왕궁으로 끌려갔으나
왕은 오히려 그들을 신하로 삼으면서 아이데시우스에게는 궁중 연회에서 술을 따르는 직책을 그
리고 성 프루멘티우스에게는 서기직을 맡겼다.
그들은 왕이 죽은 뒤에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왕비의 요청으로 그 지방에 계속 머물면서
서방의 상인들로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해 전해 듣고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왕의 아들이 계승하게 되자 그들은 완전히 석방되어 아이데시우스는 티레로 돌아가서
사제가 되었고, 성 프루멘티우스는 347년경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에게 가서 에티오피아의 선교사로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그를 악숨의 주교로 축성하여 파견하였다.
그의 선교 활동은 왕의 형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개종자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 프루멘티우스가 사망한 후 에티오피아에서는 그를 ‘아부나’(Abuna)라고 불렀는데
이는 '우리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현재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에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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