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0월12일(월) 聖세라피노, 聖에드윈님..등
H-Simon
2009. 10. 11. 16:22
10월12일(월) 聖세라피노, 聖에드윈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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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이탈리아 몬테그라나로에서 어느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성 세라피누스(또는 세라피노)는
어릴 때부터 양치기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양친을 잃은 후 그는 맏형 밑에서 일을 했는데, 형은 구두쇠에다 냉혹한 주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16세 때인 1556년에 집을 나와서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가 되어 1년 후에
서원을 하고 세라피누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좋은 성품과 열심을 지녔던 세라피누스는 급속도로 영웅적인 덕을 닦았다.
밤마다 그는 성체 앞에서 3시간 동안 기도했고 아침 미사 후에야 방으로 갔다.
그는 원장의 허가를 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비신자들 가운데에서 노동자들처럼 일을 하였다.
한번은 그가 로레토(Loreto) 성지로 순례를 가던 중 홍수로 불어난 포덴차 강을 건너지
못할 때 그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맨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수도원에 있는 배추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받을 사람이 너무나 많아 걱정하면서 돌아와 보니 배추들이 그대로 있어서 계속하여
배추들을 날마다 준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십자성호로써 병자들을 치유했고, 영을 식별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은혜로써
교회 안팎에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다가 아스콜리피체노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는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노섬브리아의 국왕 성 에드윈은 627년 부활절에 요크(York)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자신의 지원으로 건설된 유서 깊은 성 베드로(Petrus)의 목조 성당에서 영세했다는 사실은
잉글랜드(England) 교회의 초석이 되었음을 뜻할 만큼 중요하였다.
왕의 영세로 인하여 귀족과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물론 수많은 개종자들이 순식간에 생김으로 인하여 준비가 덜 된 사람도 있고 또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성 에드윈은 백성들의 귀감이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 베다(Beda)는 그의 인품을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는 평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고, 입이 무거우며,
신앙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주요한 성지마다 놋쇠 컵들을 마련하여 순례자들에게 물을 먹게 하도록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영국에 최초로 평화를 안겨 준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이토록 훌륭한 왕인 성 에드윈은 17년 동안 재임하다가 633년의 전투에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리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로마의 베네라빌레 성당 벽에 있는 영국 순교자들 속에 그를 포함시키도록 허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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