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0월1일- 아기 예수의 聖女 데레사 童貞學者기념일..등

H-Simon 2009. 9. 30. 09:26

 

 
10월1일(목)
   아기 예수의 聖女 데레사 童貞學者기념일..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복자 니콜라오 Nicholas 10월 1일 설립자 포르카 팔레나(Forca Palena) +1449년
2 성녀 데레사 ** Teresa 10월 1일 수녀,교회학자 리지외(Lisieux) 1873-1897년
3 돔니노 Domninus 10월 1일 순교자   +304년
4 레미지오 ** Remigius 10월 1일 주교 랭스(Reims) 437?-533년?
5 로마노 ** Romanus 10월 1일 부제,음악가   +6세기경
6 성녀 막시마 Maxima 10월 1일 순교자 리스본(Lisbon) +302년경
7 멜로로 Melorus 10월 1일 순교자 콘월(Cornwall) +연대미상
8 바보 ** Bavo 10월 1일 수도승,은수자   +653년경
9 베리시모 Verissimus 10월 1일 순교자 리스본(Lisbon) +302년경
10 아레타 Aretas 10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11 에바그리오 Evagrius 10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12 복자 요한 John 10월 1일 수사 두클라(Dukla) +1484년
13 성녀 율리아 Julia 10월 1일 순교자 리스본(Lisbon) +302년경
14 크레센스 Crescens 10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15 프란치스코 Francis 10월 1일 은수자 페자로(Pesaro) +1350년경
16 프리스코 Priscus 10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17 피아톤 Piaton 10월 1일 신부,순교자   +286년
총 17 성인
 
 
 
 
 
   데레사(10.1)
 
성인명 데레사(Teresa)
축일 10월 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교회학자
활동지역 리지외(Lisieux)
활동연도 1873-1897년
같은이름 소화 데레사, 소화데레사, 테레사, 테레시아

   원주교구 배론 성지에 있는 성녀 소화 데레사상 모습입니다.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의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과 젤리 게랭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와 폴린느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7년 6월 10일 성녀 테레사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레미지오(10.1)
 
성인명 레미지오(Remigius)
축일 10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랭스(Reims)
활동연도 437?-533년?
같은이름 레미기오, 레미기우스, 레미지우스
 

   프랑스 북서부 피카르디지방 랑의 에밀리우스 백작과
성녀 칠리니아(Cilinia, 10월 21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레미기우스는 수아송의
주교 성 프린치피우스(Principius, 9월 25일)의 형이다.
랭스에서 교육받은 성 레미기우스는 학식이 뛰어나고 성덕이 높았기 때문에
불과 22세인 459년에 랭스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7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프랑크족의 개종을 시도하였다.
496년 이교도인 북부 프랑스 지방의 왕 클로비스가 그에 의하여 개종함으로써,
북부 전역에 그리스도 교회가 뿌리 내리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성 레미기우스는 열렬한 정통교회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아리우스파를 적극
몰아냈으며, 어느 아리우스파 주교를 회개시킨 사례도 있다.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힘찬 주교였고, 프랑크족들의 사도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황 레오 9세는 1049년 성인의 유품들을 생 르미대수도원으로 옮겼다.
그는 레미로도 불린다.
 
 
 
 
 
 
     ▶로마노(10.1)
 
성인명 로마노(Romanus)
축일 10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부제, 음악가
활동지역  
활동연도 +6세기경
같은이름 로마누스

 


   성 로마누스는 비잔틴 찬미가 저자로서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인 듯하며 힘스에서 이주해온 시리아 사람이다.
그는 베이루트에서 부제로 지냈고 그 후 콘스탄티노플로 왔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수천 곡의 찬미가 가운데 80여
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 찬미가는 매우 극적이고 생기발랄하며 전례에 꼭 맞는 아름다운
시들인데, 현대인의 취향에는 다소 긴듯하고 또 산만한듯하게 느껴진다고도
평을 하지만, 뛰어난 영성과 신앙을 묘사하는 가사들이다.
성 로마누스는 소위 콘타키온이라 부르는 찬미가 형태에 전통적인 형태를
부여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첫 번째 시는 성탄을 노래한 것이다.
 
 
 
 
 
 
  ▶바보(10.1)
 
성인명 바보(Bavo)
축일 10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승,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53년경
같은이름 알로윈
 

   성 바보는 부유한 지주로서 훌륭한 부인을 맞이하였으나,
그의 생활은 아주 무질서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은 지
얼마 뒤부터 그는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 아만두스의 지도하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리하여 그는 성인을 따라 프랑스와 플랑드르 지방의 전교여행에 수행하면서
자신의 지난 생활을 크게 속죄하였다. 우연한 어느 기회에 바보는 전에 농노로
팔았던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사람을 다시 풀어주고 겐트의 원장 성 플로베르투스의 수도원 근방
숲에서 은수자로 살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 성 바보 자신도 베네딕토회 수도승으로서 은둔하며 여생을 살다가
성 바보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운명하였다. 그는 알로윈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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