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9월25일(금) 聖 세르지오, 福者 헤르만님..등

H-Simon 2009. 9. 28. 12:28

 

 
9월25일(금) 聖 세르지오, 福者 헤르만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나이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루포 Lupus 9월 25일 주교 리옹(Lyon) +542년
2 바오로 Paul 9월 25일 순교자   +연대미상
3 세르지오 ** Sergius 9월 25일 신부,수도원장,설립자 라도네즈(Radonezh) 1314-1392년
4 아나카리오 Anacharius 9월 25일 주교 오세르(Auxerre) +605년
5 알베르토 ** Albert 9월 25일 총대주교 예루살렘(Jerusalem) +1214년
6 체올프리도** Ceolfrid 9월 25일 수도원장   642-716년
7 클레오파 Cleophas 9월 25일 신약인물,예수의 제자,순교자   +1세기
8 성녀 타타 Tatta 9월 25일 순교자   +연대미상
9 피르미노 Firminus 9월 25일 주교,순교자 아미앵(Amiens) +4세기초?
10 핀바르 ** Finbar 9월 25일 주교,수도원장 코크(Cork) +633년경
11 복자 헤르만** Herman 9월 25일 수사   1013-1054년
총 11 성인

 

 

 

  

 

 

    ▶세르지오(9.25)
 
성인명 세르지오(Sergius)
축일 9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지역 라도네즈(Radonezh)
활동연도 1314-1392년
같은이름 세르기오, 세르기우스, 세르지우스

 


   러시아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세르기우스는 로스토프에서 태어나
바르톨로메우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5세 때에 그는 모스크바 통치자들의 로스토프 침략을 피하여 정처 없이
온 가족이 떠나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모스크바 교외인 라도네즈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1335년 부모와 사별한 세르기우스와 그의 형 스테파누스는
마코프카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세르기우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은수생활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몰려들자 세르기우스는 후에 유명해진 ‘삼위일체 수도원’을
세워 원장이 되었고, 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타타르족의 침략 이후 사라졌던 러시아에 수도 공동체를 재건한 것이다.
그 후 그는 헤르쟈크 강변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던 중 모스크바의
대주교 알렉시스를 계승하도록 요청받았으나, 자신의 소명은 수도생활이라고
판단하고 강력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었던 그는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조국 러시아의 일치를 위해 제후들의 통합과 일치를
요청하였고, 마침내 모스크바의 디미트리 돈스코이왕자가 타타르족과 싸워서
러시아를 해방시킬 때 두 명의 수도자를 파견하였다.
이 승리 이후 그의 명성은 더욱 퍼져나갔고, 러시아 왕가의 협조는 매우 관대하여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짓게 되었다.
1378년 그는 모스크바 대주교 임명을 끝내 사양했고,
또 1392년에는 자기 수도원의 원장직도 사임한 후 6개월 만에 서거하였다.

   성 세르기우스는 묵상을 즐겨 하고 항상 기도하는 영성적인 사람으로서
러시아 최초의 신비가로 불려지기도 한다. 1422년 7월 5일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노브고로트에서 시성되었으며, 그 후 그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성당이
세워졌고, 진정한 수도자의 소명을 실현한 성인으로 공경받으며
'천상의 사람'이라고 불렸다. 그가 세운 삼위일체 수도원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의 종교적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알베르토(9.25)
 
성인명 알베르토(Albert)
축일 9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총대주교
활동지역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1214년
같은이름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이탈리아 베르첼리의 주교인 성 알베르투스 히에로솔리미타누스는
파르마의 저명한 가문 출신으로 신학과 법률을 수학한 후,
롬바르디아 모르타라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1184년 그의 나이 35세 때 보비오의 주교로, 그 다음에 베르첼리의 주교로서
사목하였다.

   그는 외교적인 수완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교황 클레멘스 3세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서는 북이탈리아의 사절로 임명되었다.
1187년경 사라센인들이 예루살렘을 재공격할 때, 신자들과 이슬람교
신도들로부터 공경을 받던 성 알베르투스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선임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성 알베르투스에게 다가오는 라테라노 공의회에
공헌하도록 요청하였으나, 그는 결국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체올프리도(9.25)
 
성인명 체올프리도(Ceolfrid)
축일 9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642-716년
같은이름 체올프리두스, 체올프리드, 케올프리도, 케올프리두스, 케올프리드
 

   영국의 노섬브리아에서 태어난 성 체올프리두스는 18세 때 질링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리펀의 발프리두스 수도원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리펀의 수련장으로 일하다가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Benedictus Biscop, 1월 12일)에 의하여
캔터베리 웨어머스의 성 베드로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엄격성은 수도자들로 하여금 심한 반발을 사게 되어
리펀으로 되돌아와야만 하였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을 수행하여 678년에 로마로 갔으며,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가 웨어머스 인근의 재로에 성 바오로 수도원을 세울 때
그곳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흑사병이 재로 전역을
휩쓸었을 때 그와 한 젊은 학생만 살아남았다.
690년에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가 사망할 때 그는 원장으로서 광활한 수도원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이 수도원을 학문의 전당으로 발전시키고자 도서관도 건립하였다.
결국 이곳은 성경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716년 그는 고령과 질병을 핑계로
은퇴하였다가 프랑스 샹파뉴의 랑그르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성 베다(Beda, 5월 25일)가 유명하다.
 
 
 
 
 
 
     ▶핀바르(9.25)
 
성인명 핀바르(Finbar)
축일 9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수도원장
활동지역 코크(Cork)
활동연도 +633년경
같은이름 삔바르, 핀바, 핀발

 


   기록상으로 성 핀바르는 아일랜드 북서부 코노트에서 태어나 로칸에서
세례를 받고, 남동부 킬케니의 킬마카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먼스터에서
활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베르 혹은 바르인데,
킬마카힐의 어느 수도자가 피온바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이 이름은 '흰 머리'라는 뜻이다.

   그는 몇몇 수도자들과 함께 로마 순례에 올랐는데, 돌아오는 길에 웨일스
지방의 성 다윗을 찾아보고 감명을 받았다. 두 번째 로마 순례에서
그는 주교품을 받았다.
기이한 것은 그 당시 교황이 환시를 보고 그에게 주교품을 주어야 한다고 직접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늘로부터 축성된 사람으로 불렸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그는 스코틀랜드를 순회하면서 설교하다가,
남부 아일랜드에서 집중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면서, 아이로우 호수의
어느 작은 섬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 후 그는 리 강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코크시로 발전하였고, 따라서 그는 이 도시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
그의 수도원은 남부 아일랜드에서 유명하게 되었고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633년경 클로인에서 운명하였다.
 
 
 
 
 
 
    ▶헤르만(9.25)  
 
성인명 헤르만(Herman)
축일 9월 25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013-1054년
같은이름 헬만

 


   헤르만 콘트락투스로도 불리는 그는 독일 남서부
슈바벤의 알츠하우젠에서 불구자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유기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스위스
보덴 호수의 라이헤나우섬에 있는 수도원 앞에 버려졌다.
그는 이 수도원에서 거의 모든 삶을 살았다. 20세 때에 서원을 하고 수도자가
되었는데, 그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엮어내는 찬미가들은
전 유럽 학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대표적인 찬미가는
“구세주의 거룩하신 어머님”(Alma Redemtoris Mater),
"모후이시며“(살베 레지나, Salve Regina)이다.
그는 1054년 9월 21일 라이헤나우 섬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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