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9월24일(목) 聖 제랄드, 聖 파치피코님..등

H-Simon 2009. 9. 23. 09:11

 

 
9월24일(목) 聖 제랄드, 聖 파치피코님..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으신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나이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루스티코 Rusticus 9월 24일 주교 클레르몽(Clermont) +446년
2 아나탈론 Anathalon 9월 24일 바르나바의 제자,주교 밀라노(Milano) +1세기
3 안도키오 Andochius 9월 24일 신부,순교자   +2세기
4 Gerard Sagredo 9월 24일 주교,순교자 베네치아(Venezia) 980-1046년
5 제레마로 Geremarus 9월 24일 신부,수도원장   +658년경
6 티르수스 Thyrsus 9월 24일 부제,순교자   +2세기
7 파치피코** Pacificus 9월 24일 신부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1653-1721년
8 파프누시오 Paphnutius 9월 24일 은수자,순교자   +303년
9 펠릭스 Felix 9월 24일 상인,순교자   +2세기
10 헤르쿨라노 Herculanus 9월 24일 군인,순교자   +2세기
총 10 성인
 

 

 

     ▶제라르도 사그레도(9.24)
 
성인명 제라르도 사그레도(Gerard Sagredo)
축일 9월 2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베네치아(Venezia)
활동연도 980-1046년
같은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베네치아의 성 제라르도 사그레도(Gerardus Sagredo)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의 귀족이었던 성 게라르두스 사그레도는
산 조르지오 마초로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볼로냐에서 수학하였으며,
뛰어난 학덕을 소지하고 있었고 후에 원장이 되었다. 그는 성지에서 고적한
은수자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곳을 향하다가 악천후로 인하여 배가
달마티아 해안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헝가리에 정착하게 되었고
더욱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020년경 헝가리의 국왕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8월 16일)는 그를 자신의
 
유일한 왕자인 성 에메리쿠스(Emericus, 11월 4일)의 교육을 담당하도록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 후 7년 동안은 백코니 숲 속의 은둔소에서 고적한 생활을 하다가
이번에는 국왕이 크사나드 교구를 설정하고 그를 첫 주교로 임명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세상으로 나와서 활동하였다 그의 복음 선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성 스테파누스 왕이 1038년에 서거함과 아울러 이방인들이 물밀듯
쳐들어 왔을 때 성 게라르두스는 부다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1083년에 라디슬라스 1세 왕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허가를 받아 헝가리의
주교들과 수도원장, 고관들의 회의를 소집하여 성 스테파누스 왕과 성 에메리쿠스
 그리고 성 게라르두스의 유해를 장엄한 예식으로써 공경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는 베네치아의 순교자로 추앙받으며, '헝가리의 사도'로서도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파치피코(9.24)
 
성인명 파치피코(Pacificus)
축일 9월 2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활동지역 산 세베리노(San Severino)
활동연도 1653-1721년
같은이름 빠치피꼬, 빠치피꾸스, 파치피쿠스, 파키피코, 파키피쿠스

 

산 세베리노의 성 파치피코(Pacificus)


   성 파치피쿠스(또는 파치피코)는 안토니우스 디비니와 마리아 브루니의
아들로서 세례명은 가롤루스 안토니우스였다.
다섯 살 때에 양친을 잃은 그는 거칠고 난폭했던 외삼촌댁에서 자랐다.
외삼촌은 그를 마치 하인인 양 마구 다루었으나 어린 파치피쿠스는 17세가 될
때까지는 오로지 참기만 하였다. 1670년 그는 포라노에 있던 작은 형제회에
들어가서 파치피쿠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그는 25세 때에 사제가 되었으며, 회원들에게 2년간
철학을 가르치다가 인근 마을이나 교회가 없는 곳을 골라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강론은 지극히 부드럽고 단순했으므로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넉넉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인하여 그는 눈이 멀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조차 불구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오로지 기도와
 보속에만 전념하다가 운명하였다.
특히 그는 사보이아가 터키인들을 무찌르고 승리한다는 예언을 적중하여
큰 공경을 받았고,
또 미사 중에는 자주 탈혼에 빠졌는데 가끔 탈혼 상태가 몇 시간 동안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1786년 8월 4일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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