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9월7일(월) 聖女그리모니아, 聖소존님..등
H-Simon
2009. 9. 6. 15:06
9월7일(월) 聖女그리모니아, 聖소존님..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으신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성녀 그리모니아는 아일랜드 어느 족장의 딸로서, 12세 때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평생 동정을 서원하였다. 이 같은 서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부친은 결혼하기를 강요하므로,
그녀는 프랑스로 도망하였고 피카르디의 티에라슈 숲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관상할 때이면 자주 탈혼상태에 빠져 들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보낸 사람들은 그녀를 찾으면 데려오든지 아니면 죽이라는 명을 받았다.
그녀는 끝내 돌아가기를 거절하므로 그들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져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녀가 살던 곳에 성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라 샤펠이다. 그녀는 동정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

코시치의 성 마르코(Marcus Knzevcanin) |
성 마르코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서 로마의 제르마니쿰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은 후 고향에서 일하기 위하여 귀향하였다. 그는 헝가리의 수석 주교 휘하에서 에스테르곰
대교구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예수회원인 헝가리 출신의 성 스테파누스 폰그라츠와 체코 출신의 성 멜키오르 그로데크와
함께 슬로바키아의 코시치 근방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다.
1619년 이들 사제들이 사도직과 교육 활동을 펴고 있던 중, 이 지방을 침략한 칼뱅파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야만적인 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1995년 7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코시치의 순교자로서 시성되었다.
☞ < 7, 9 > 번....함께 참조할 내용입니다. |
성 소존은 세례명이고 보통으로는 타라시우스라고 불렀다 한다.
그는 실리시아의 양치기였는데, 어느 날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던 중에 주님이 발현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지금 양떼를 떠나 나를 따르라” 하셨다.
그가 잠을 깨서 가까운 마을인 폼페이오폴리스로 갔더니 마침 그곳에서 이교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는 곧장 이교 신전으로 가서 황금 신상을 끌어내리고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이 사건 때문에 수많은 무죄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것을 보고, 그는 법정으로 가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후 그는 산 채로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