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7일(月) 聖드리텔모, 聖女클라라님 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으신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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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
성 인 명 |
영 어 명 |
축 일 |
신 분 |
지 역 |
연 도 |
1 |
성 |
드리텔모** |
Drithelm |
8월 17일 |
수사 |
|
+700년경 |
2 |
성 |
로가토 ☞4 |
Rogatus |
8월 17일 |
수도승,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3 |
성 |
루스티코☞4 |
Rusticus |
8월 17일 |
차부제,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4 |
성 |
리베라토** |
Liberatus |
8월 17일 |
수도원장,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5 |
성 |
마마 |
Mamas |
8월 17일 |
순교자 |
|
+275년경 |
6 |
성 |
막시모☞4 |
Maximus |
8월 17일 |
소년,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7 |
성 |
미론 |
Myron |
8월 17일 |
신부,순교자 |
키지쿠스(Cyzicus) |
+250년 |
8 |
성 |
바오로 |
Paul |
8월 17일 |
순교자 |
|
+270년 |
9 |
성 |
보니파시오☞4 |
Boniface |
8월 17일 |
부제,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10 |
성 |
세르보 ☞4 |
Servus |
8월 17일 |
차부제,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11 |
성 |
셉티모 ☞4 |
Septimus |
8월 17일 |
수도승,순교자 |
카프사(Capsa) |
+483년 |
12 |
성 |
아나스타시오 |
Anastasius |
8월 17일 |
주교 |
|
+553년 |
13 |
성 |
에우세비오 |
Eusebius |
8월 17일 |
교황 |
|
+309년 |
14 |
성녀 |
율리아나 |
Juliana |
8월 17일 |
동정 순교자 |
|
+270년 |
15 |
성녀 |
클라라** |
Clare |
8월 17일 |
동정녀,수녀원장 |
몬테팔코(Montefalco) |
1268-1308년 |
16 |
성 |
히야친토** |
Hyacinth |
8월 17일 |
신부,선교사 |
크라쿠프(Krakow) |
1185-1257년 |
노섬브리아에 살던 성 드리텔모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수덕생활을 하고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는 가정을 꾸미고 살았다.
693년 어느 날 그가 평소에 앓던 병이 위중하더니, 저녁에는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일어나서,
죽은 자신의 육신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아내만은 정신없이 서 있었다. 이때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겁내지 마시오. 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소. 이제부터는 그전대로 살지 않고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살 것이오.”
그런 후 그는 재산을 아내와 자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3등분하여 나누어 준 뒤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고,
지옥을 두려워하며 천상 영복을 바라는 사람에게만 들려주었다 한다.
그가 지옥이나 천국을 보았을 것이라 하여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후 그는 일생동안 독수자처럼 엄격한 고행을 하며 지냄으로써 수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였다고 한다.
성 베다는 “그가 지금도 아일랜드에서 독수생활을 하며 놀라운 삶을 산다.”고 증언하였다. |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 성 보니파티우스, 성 막시무스, 성 로가투스, 성 루스티쿠스, 성 셉티무스와
성 세르부스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 2, 3, 6, 9, 10, 11번은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 |

몬테팔코의 성녀 클라라(Clara) |
프란치스코회와 아우구스티니아노회 사이에는 이탈리아 스폴레토 교구의 몬테팔코에서 태어난 성녀 클라라(Clara) 수녀가 서로 자기 수도회의 성녀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 이유는 성녀 클라라가 요안나의 지도를 받으면서 15년 동안 은둔소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곧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폴레토의 주교에게 정규 수도원 생활을 간청하여 허가를 받을 때,
그 주교가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회칙을 주었다.
이들의 은둔소는 1290년에 수도원으로 세워졌고, 요안나가 죽고 난 뒤에 성녀 클라라는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의 생활은 그 엄격성과 높은 덕으로 유명하다. 하루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지냈고,
눈이 오더라도 맨발로 다녔으며, 하루에 주님의 기도를 백 번씩 바쳤다고 한다.
그녀의 말과 표양은 공동체가 완덕을 지향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고,
하느님과의 일치는 관상생활의 모범이 되었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수도원의 재산을 수도원 밖의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배려하는 등 획기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성녀 클라라는 우리 주님의 고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다. 그 때문에 성녀의 몸에
십자가의 형상이 인각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그녀는 1737년에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서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185년 폴란드 남서부 슐레지엔 근처 란카 성에서
태어난 성 히야킨투스는 크라쿠프와 프라하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볼로냐에서 법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폴란드로 돌아와서 크라쿠프 교구장의
비서가 되었다. 1220년 주교와 함께 로마에 갔다가 그곳에 와 있던 성 도미니코(8월 8일)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폴란드로 돌아와서 1222년 크라쿠프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비롯하여
프로이센과 리투아니아 전역을 돌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57년 8월 1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폴란드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 그는 1594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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