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7월2일(木) 聖 마르티니아노, 聖女 모네군다님 등..

H-Simon 2009. 7. 1. 13:45
7월2일(木)  聖 마르티니아노,
                 聖女 모네군다님 등..
 
                     

                                                 <6 월   예 수 聖 心 聖 月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의 기도와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사랑과 평화로 강복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나아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마르치아 Marcia 7월 2일 순교자   +284년
2 마르티니아노** Martinian 7월 2일 사도들의 제자,순교자   +연대미상
3 성녀 모네군다 ** Monegundis 7월 2일 과부,수녀   +570년
4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 ** Bernardino Realino 7월 2일 증거자   1530-1616년
5 비탈리스 Vitalis 7월 2일 순교자   +284년
6 스위투노 Swithun 7월 2일 주교 윈체스터(Winchester) +862년
7 성녀 심포로사 Symphorosa 7월 2일 순교자   +284년
8 아리스톤 Ariston 7월 2일 순교자   +284년
9 오우도체오 Oudoceus 7월 2일 주교 란다프(Llandaff) +615년
10 오토 ** Otto 7월 2일 주교 밤베르크(Bamberg) 1060-1139년
11 우르바노 Urban 7월 2일 순교자   +284년
12 유스토 Justus 7월 2일 순교자   +284년
13 크레센시아노 Crescentian 7월 2일 순교자   +284년
14 펠리치시모 Felicissimus 7월 2일 순교자   +284년
15 펠릭스 Felix 7월 2일 순교자   +284년
16 푸티치아노 Futychian 7월 2일 순교자   +284년
17 프로체소 Processus 7월 2일 사도들의 제자,순교자   +연대미상
총 17 성인
 

 

 

    마르티니아노(7.2)
 
성인명 마르티니아노(Martinian)
축일 7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성 프로케수스와 마르티니아누스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세기 이전부터
공경을 받고 있으나 이분들의 전기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베드로와 바오로가 마메르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40여 명이 개종했다고 한다.
즉 성 베드로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바위에서 물이 흐르게 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때 위의 두 순교자가 개종하였다.
그들의 상급 관리이던 바울리누스는 두 사람이 새로운 신앙을 거부토록
노력하다가 끝까지 항거하므로 칼로 베었다.
이때 그들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하는 말을 남겼다.
그들의 유해는 아우렐리아 가도에 묻혔고, 성 그레고리우스는 자주 그들의
순교 사실을 그의 강론에서 언급하였다.

 
 
 
 
   ▶모네군다(7.2)
 
성인명 모네군다(Monegundis)
축일 7월 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수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570년
같은이름 모네군디스
 
   프랑스 북서부 샤르트르 태생인 성녀 모네군다는 두 딸을 둔 어머니였다.
처음에 그녀는 이 세상의 행복이 참된 것으로 믿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이 두 딸을 데려갔을 때, 너무나 슬픔에 복받쳐 울지도 못하다가 마침내 하느님께 대한 봉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봉헌생활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남편의 동의를 얻고서 샤르트르에 움막을 짓고
보속생활을 시작하였다.
방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고 또 물과 빵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후 그녀는 투르(Tours)로 가서 성 마르탱 경당 근처에 또 다른 움막을 세우고 같은 생활을 계속하였다. 수많은 여성이 그녀 주위에 모여들므로
하는 수 없이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생-피에르-러-푸에이유 수녀원이다.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7.2)
 
성인명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Bernardino Realino)
축일 7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30-1616년
같은이름 베르나르디누스, 베르나르딘

 


   성 베르나르디누스 레알리노(또는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는
1530년 이탈리아의 모데나 부근 카르피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랑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성장하여 법조계에 투신한 후 몇 년이 지나 34살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그는 성 이냐시오의 초기 동반자 중 한 명인 알폰소 살메론 신부에 의해
나폴리에서 수련을 받았다. 그 후 나폴리에서 10년간 사목하며 설교와 교리교육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이와 수감자들을 위해 일했다.

   그의 성덕과 빛나는 설교로 인해 그는 현세 생활에서도 성인으로
인정받았을 정도였다.
신자들과 함께 사목활동을 한 후 그는 레체(Lecce)의 대학 강단에
섰으며 결국 학장이 되어 삶의 전부를 보냈다.
사망하기 6년 전에 넘어져서 다친 두 곳의 상처가 평생 낫지 않았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 병석에서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병에 담아
보존하였다. 그는 1616년 레체에서 선종하였다.

   그 피는 다양하고도 특이한 방법으로 움직였다.
어떤 용기에서는 100년이 지나도록 액체 형태로 남아 있었다.
다른 용기에서는 거품이 생겨 그 양이 늘어난 듯이 보였다.
또 다른 하나에서는 성인의 기일에 성인의 혀를 담고 있는 유해함 근처에 피가 담긴 용기를 가져갔을 때 그 피가 “끓고” 거품이 일었던 일이
목격되기도 하였다. 1634년 교회 당국자의 참여 하에 성 베르나르디누스의
무덤이 개방되었다. 많은 양의 시신이 수습되어 뼈와 분리된 후 두 개의
유리병에 옮겨져 유골과 함께 다시 매장되었다.

   성해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의 참여하에 1711년에 레체의 주교는 다시
그의 무덤을 열었다. 유리병 하나는 부서졌지만 다른 병에 있는 신체조직들은
변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고 진한 붉은색 액체 속에 담겨 있었다.
의사들은 이것이 피라는 사실을 밝혀내었고, 그 보존 상태와 달착지근한 냄새는 기적적인 일이라고 증언하였다.
2년 후 경신성사성성에서 지정된 세 명의 주교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피가
액체이며 진홍색을 띠고 거품이 인다는 것을 검사했다. 1804년 레체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인의 피를 담당하고 있던 게타노 솔라초 신부는 그 피가 액체
상태이고 두 번이나 거품이 일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남겼다.

   수녀들 역시 이 사건을 목격했으며 한 예수회 사제도 1852년에 그러한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것을 맹세하는 선언문을 남겼다. 이런 사실은 그와 비슷한 현상들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믿을만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1895년 더 이상 액체 상태로 남아있는 혈액을 찾을 수 없었다.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1895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후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토(7.2)
 
성인명 오토(Otto)
축일 7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밤베르크(Bamberg)
활동연도 1060-1139년
같은이름 오또

 


   독일 남서부 슈바벤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오토는 아주 젊은 나이에
사제로 서품된 후, 1090년부터 하인리히 4세 황제 궁에 들어가서 1101년에는
그의 수상이 되었다.
그는 성좌와 황제간의 알력이 발생했을 때, 아주 용감하게 황제를 반대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 황제에 의하여 밤베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에도 교황 파스칼 2세가 자신을 축성해 줄 때까지 황제의 명을 거부했던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하인리히 5세 황제와 교황 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신명을 다 바쳤으며,
폴란드의 볼레슬라오 3세를 초청하여 동 포모제 선교를 시작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기도 하였다. 그는 1189년 교황 클레멘스 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오토는 매우 지혜로운 성직자였을 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후원자였다.
그는 포모제(독일과 폴란드 북부 발트해 남안 지대)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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