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6월21일(일-南北統一祈願미사) -聖 라자로, 성 알로이시오 곤사가님..등

H-Simon 2009. 6. 20. 15:22

 

6월21일(일-南北統一祈願미사)

          聖 라자로, 성 알로이시오 곤사가님..등

                              

                                                         <6 월   예 수 聖 心 聖 月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의 기도와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사랑과 평화로 강복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나아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데메트리아 Demetria 6월 21일 동정 순교자   +4세기경
2 라자로 ** Lazarus 6월 21일 신약인물   +1세기경
3 랄프 Ralph 6월 21일 주교 부르주(Bourges) +866년
4 레우프리도 Leufried 6월 21일 수도원장   +738년
5 루피노 Rufinus 6월 21일 순교자   +1세기경
6 성녀 마르시아 Martia 6월 21일 순교자   +1세기경
7 마르티노 Martin 6월 21일 주교 통그레스(Tongres) +350년
8 메엥 Meen 6월 21일 수도원장 브르타뉴(Bretagne) +6세기경?
9 아폴리나리스 Apollinaris 6월 21일 순교자   +연대미상
10 알로이시오 곤자가 ** Aloysius Gonzaga 6월 21일 수사,신학생   1568-1591년
11 알바노 ** Alban 6월 21일 순교자 마인츠(Mainz) +5세기경
12 에우세비오** Eusebius 6월 21일 주교,순교자 사모사타(Samosata) +379년
13 엔젤문도 Engelmund 6월 21일 선교사 벨젠(Belsen) +720년
14 요한 릭비 John Rigby 6월 21일 순교자 영국(UK) +1600년
15 우르치세노 Urciscenus 6월 21일 주교 파비아(Pavia) +216년
16 치리아코 Cyriacus 6월 21일 순교자   +연대미상
17 테렌시오 Terence 6월 21일 주교,순교자 이코니움(Iconium) +1세기
총 17 성인

 

  

                     너무나 인간적이시며

                     아름답게, 아름답게 사셨던

                     성인 성녀님들이시여.....

                     감사합니다!......사랑 합니다!

  

  

    ▶라자로(6.21)
 
성인명 라자로(Lazarus)
축일 6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약인물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Dives and Lazarus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루가 복음 16장 19-31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비유 중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중세시대에 널리 알려졌는데,
대개는 라자레토(병원), 라자로네(걸인) 그리고
성 라자로 수도회(나환자를 돌보는 수도회) 등의 명칭이 그에게서 유래한다.

 

 

 

 

  ▶알로이시오 곤자가(6.21)
 
성인명 알로이시오 곤자가(Aloysius Gonzaga)
축일 6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신학생
활동지역  
활동연도 1568-1591년
같은이름 공사가, 알로이시우스

 

성 가롤로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좌)와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Aloysius Gonzaga, 우)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의 후작 페란테(Ferrante Gonzaga)와
마르타 타나 산테나(Marta Tana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2년 후인 1579년에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브레시아(Brescia) 지방 만토바(Mantova)로 옮겼다. 1581년 알로이시우스의 가족은 마드리드(Madrid)로 갔고,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알로이시우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일 로마(Roma)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로마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들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도시 전체에는
흑사병이 퍼졌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던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이 병에 전염되어 6월 21일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시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하였던 알로이시우스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 후 3년 후 알로이시우스 성인은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알바노(6.21)
 
성인명 알바노(Alban)
축일 6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마인츠(Mainz)
활동연도 +5세기경
같은이름 알바누스, 알반, 알비노, 알비누스

 

   성 알바누스(Albanus, 또는 알바노)는 그리스인 사제로서
성 우르수스(Ursus)와 함께 그리스 남부 낙소스 섬에서 이탈리아
밀라노(Milano)로 여행을 하였는데, 이때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아리우스파(Arianism)와 격렬한 싸움을 하던 때였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두 사람을 환대하고 정통교회 수호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한편, 알프스 건너편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그들은 쾌히 승낙하였으나 성 우르수스는 발레다오스타에서 순교하고,
알바누스는 마인츠로 가서 이단들을 상대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후눔에서 아리우스파의 자객들에 의해 목이 잘려 숨졌다.
마인츠 시민들은 성 알바누스를 위하여 성당을 세웠고,
그의 유해가 처음 묻혔던 곳의 지명을 알반스베르그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그는 알비누스(Albinus) 또는 알반(Alban)으로도 불린다.

 

 

 

 

  ▶에우세비오(6.21)
 
성인명 에우세비오(Eusebius)
축일 6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사모사타(Samosata)
활동연도 +379년
같은이름 에우세비오스, 에우세비우스
 
   정통 교리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사모사타의 주교이던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361년의 안티오키아 시노드에 참석하여
멜레티우스(Meletius)를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출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멜레티우스가 선출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멜레티우스가 정통파임이 명백해지자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는
에우세비우스에게 시노드(Synod)의 선거권 행사를 포기하도록 요구하였다.
그가 완강히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오른손을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끝내 그가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용기에 크게 감동하여 그를 석방하였다.

   그 후 에우세비우스는 약 2년 동안 정통파(가톨릭)와 아리우스파간의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372년 그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주교로
성 바실리우스(Basilius)를 선출하는데 큰 몫을 하였고,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에우세비우스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발렌스 황제에게 항거하라고 격려하다가 마침내 374년 황제에 의하여 트라스로 유배를 갔다.
378년 발렌스 황제가 죽자 그는 사모사타로 돌아왔고, 다음 해에 돌리카에서
운명하여 풍운아의 일생을 마쳤다.